(출애굽기 39) 자기 본성에 관한 책임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4. 2. 20. 06:34 Writer : 김홍덕

출애굽기 21장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폭력과 살인 등에 관한 율법과 함께 특별히 소가 사람을 헤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율법이 있다. 소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때 소유한 사람의 죄를 대신하는 제물이다. 한 마디로 소는 사람의 소유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를 대신해 드리는 제물, 곧 내 자아를 대변하는 개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사람이 소유한 소유물에 관한 하나님의 계명이다.

 

소는 사람이 소유하긴 하나 사람 맘대로 되는 존재는 아니다. 반면에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 나의 죄를 대신해서 드리는 제사 제물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산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산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러한 삶을 구성하고 형성하는 건 사람이 가진 생각과 본성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생각과 본성이 사람의 생각과 달리 사람 맘대로 쉽게 통제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바로 소처럼.

 

사람을 들이받는 소에 관한 계명은 우리가 가진 본성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소유한 소가 사람을 들이받은 경우, 소는 반드시 죽이되 그 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셨으나 소의 임자는 형벌을 면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각자가 소유한 본성은 죽이라는 뜻이다. 즉 사람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본성을 버리라는 뜻이며, 그 고기를 먹지 말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자기 본성으로 인한 소산을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 일로 기뻐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실질적 소득을 자기 것으로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소가 사람을 들이받는 습성이 있음을 주인이 알고 있었다면 계명은 달라진다. 이때는 소의 주인도 죽이라고 하셨다. 자기 안에 사람을 상하게 하는, 그래서 자기 본성 때문에 사람이 실족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에 관해 어떤 조치나 관리도 하지 않았다면 사람도 형벌을 받는다. 쉽게 말해 자신이 말이 거친 사람을 알고 있음에도 늘 거친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고의며 자기 책임이란 뜻이다. 아울러 사람을 실족시키는 함정을 파는 것도 똑같이 처분하라고 하셨다.

 

자기 안에 사람을 헤치는 본성이 있음에도 자기가 옳다고 살아가는 삶은 사망 가운데 있는 삶이다.

 

이 말씀은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은 자기 소유인 소를 번제로 드리듯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화를 내는 본성을 예로 이야기해 보자. 소가 제사의 제물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들이받기도 하는 것처럼 화를 내는 본성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고, 단지 자기 의로움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화를 내기도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건 선하고 온전한 것이다. 다만 그 선함과 온전함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안에 있을 때 그렇다. 태권브이가 훈이와 영희의 조정을 받을 때는 정의의 로봇이지만, 악당이 조정하게 되면 악당 그 자체이듯,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본성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된다면 선한 것이지만, 자기 의를 주장하는 데 사용한다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해도 죄가 된다. 소가 하나님의 번제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사람이 가진 자기 본성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안에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내기도 하고, 행동 그 자체로만 보면 사람이 조심스럽게 취급하거나 심지어 터부시하는 습성들이 많다. 화를 내는 게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화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고 상처를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를 낸다는 자체를 금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신앙인들이 그렇다.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보고 몸시 화를 내셨다. 하지만 도리어 그리스도로 거듭난 본성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업신여김을 당하면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다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고 극도로 화를 낸 것처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화를 내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자기의를 주장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화를 내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자기가 소유한 소가 사람을 들이받는 습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 방치하는 것과 같다. 이때는 소의 임자도 처벌을 받듯이 자기 의를 주장하며 화를 내는 일은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행위다. 또한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성품이 다른 사람에게 함정을 파는 것 같다면 이것 역시 같은 처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세상의 의를 추구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을 성공과 영광으로 삼는 자기 공로를 똑같이 이를 추구하는 이들을 유인하는데 미끼로 삼아 유인하는 일이 여기에 속한다. 신학과 종교 세계 내에 있는 경쟁에 이겨 크고 위대함을 추구하는 교회 강단에 서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게 곧 하나님께 영광이라 외치는 게 여기에 속한다.

 

사람이 가진 본성은 소가 제사 제물이 되듯 바울 사도의 말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우리가 가진 모든 본성, 화를 내는 것, 식욕이나 성욕이나 모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안에 사용되면 선하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벗어난 삶을 산다면 그 사람에게 속한 모든 본성은 세상이 보기에 아무리 선해도 죄다. 괜히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 4:4)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본성을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것과 다른 삶을 살면서 표출하면 안 된다. 그런 표출은 거의 사람을 헤친다. 그래서 소가 사람을 들이받으면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화를 내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 또 자기가 가진 어떤 본성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 이를 고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의를 주장하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며 정당화 하면 그 사람도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다. 물론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만족이 없는 에덴에서 쫓겨난 불행한 삶이라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긴 하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진 본성이 소가 제사의 제물이 되듯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의 삶이 되어야 함을 묵상해야 한다. 나의 삶이 그러한가 반추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러게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 소망은 노력이나 신념이나 행위를 단속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생명으로 다시 나야 한다. 거듭남이 구원이라 말씀하신 이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자기 생명, 삶의 본성이 되는 거듭남이 해답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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