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십계명의 1~4번째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명, 5~10번째 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명이라고 한다. 기독교 성격을 가진 많은 종교는 처음 세 번째 계명까지를 가지고 이견을 보이지는 않는다. 잘은 모르지만, 심지어 이슬람마저도 그런 것으로 안다. 하지만 네 번째 계명은 좀 다르다. 이에 따라 다른 종파가 생겼다. 안식과 안식일에 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계명을 주시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처럼 엿새 동안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제7일에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처럼 쉬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7일에 주목하지만 사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일은 '자기 일''안식'이다.

 

만약 달력의 날짜로 안식일이 정해진다고 치자. 7일이라면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언제인지 하나님께서는 밝히시지 않았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 우주의 창조까지 포함해서 언제가 7일을 기산하는 기준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시차는 또 어떻게 할 건가? '안식일은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산일을 비밀로 하실 이유가 없음을 생각하면 이건 달력의 날로 칠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핵심은 '자기 일''안식'의 정의다.

 

네 번째 계명의 핵심은 <자기 일>과 <안식의 정의>

 

 

'자기 일'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걸 상기해야 한다. 그게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셨다. 하나님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 목적을 위한 존재가 사람이다.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존재를 창조하시는 게 하나님의 일이고,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니 안식하셨다. 즉 목적이 달성되니 안식하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안식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이루어질 때 안식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된 사람은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형상은 곧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통해 표현되는 구조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 그리스도고,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게 하나님의 창조다. 그러니까 사람의 일은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안식은 이 목적, 이 일이 달성된 상태, 그 자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안식은 별나라 이야기다.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그 노력을 일주일에 한번 쉬어가는 게 안식이 아니다. 노력한다는 건 일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게 자기 일이고, 안식은 이 일을 마친 사람의 전유물

 

그러므로 안식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한 사람, 곧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의 전유물이다. 이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사람의 사전에 안식은 없다. 따라서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집단에서 일요일과 토요일 언제를 안식일로 삼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논쟁하는 건 그 자체가 아직 일하는 것이고 안식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과 생각 밖에서 아말렉의 본성에 매몰된 어리석은 가치관이다.

 

'안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안식은 무엇인가? 땀 흘리지 않고 마냥 쉬는 게 안식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안식은 목적이 달성된 상태다. 예를 들어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가 목적인 사람에게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는 그 자체로 안식이다. 누리호 발사 이전에도 침대에서 쉬기도 했겠지만 그건 안식이 아니다. 그건 일을 위한 안식, 곧 일하고 있는 것이지 안식하는 게 아니다.

 

안식은 존재의 목적이 달성된 상태

 

하나님의 안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이후에 사람에게 아무런 역사도 행하시지 않은 게 아니지 않는가? 창조가 끝나고 안식하셨다는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시기도 하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기도 했고, 돌판에 십계명을 새기기도 했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다. 게다가 아마겟돈 같은 심판은 아직 행하지도 않으셨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지 일요일 혹은 토요일에 짜장면 사 먹지 않는다고 안식일을 지키는 게 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없다면 신앙이 아니라 상식과 생각이 없는 거다.

 

또 반대로 자동차를 정지시키기 위해 엄청난 마찰을 감당하면서 엄청난 열을 견디고 자기 몸이 마모되는 브레이크는 그 엄청난 노동을 감당하는 게 안식이다. 그게 자기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오셨으므로 십자가가 곧 안식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 겟세마네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서 주신 그 일을 다 이루었다고 하셨고, 십자가에서도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건 곧 안식의 집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 안식을 넘어 영화로운 일이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4-5)

 

그러므로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을 지키는 건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가 안식이라 주장하며 짜장면도 사 먹지 않는 것이라는 식의 접근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당연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나올 때 안식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관계가 아닌데 사람이 안식할 수는 없다. 너와 나의 관계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을 온전히 그리고 항상 지키려면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된다. 그리스도는 생명이므로 나면 항상 안식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우리의 일이고 안식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게 되면 우리의 일을 마치고, 늘 안식하는 삶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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