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0장, 막 10장)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나라에서 자신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생각해보면 큰 용기로 예수님께 부탁한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에서 제자들은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왕이 되리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화를 냈다. 다른 제자들이 화를 냈다는 것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예수님은 왕이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왕이 되면 시쳇말로 한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와 요한은 물론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화를 낸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된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니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 왕이 되어 독립과 민생을 다 해결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왕이 되는 가장 온전한 자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세상의 문제, 민생과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능자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기는 하겠지만 좌우에 앉는 것은 예비된 자들의 것이라고 하시고 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7)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왕인지를 다시 설명하신다. 제자들 에게 그리스도는 왕과 같이 높이 올라가는 존재다. 제자들의 그 믿음과 생각 앞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까지 낮아지는 그리스도를 말씀하신다. 아울러 ‘너희가 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상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하신다.


사람들에게 메시아, 구세주, 구원자 심지어 영화 속의 히어로조차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들의 능력은 세상의 기준으로 항상 높은 곳에 있고 더 크고 위대한 것이다. 세상의 그 어느 영웅이나 위인이나 구원자나 히어로나 메시아도 낮아져서, 다른 사람에 잡혀가서 극형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위기를 벗어나야 제대로 된 영웅이자 메시아다. 유대인들이 달리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내려와 보라”고 조롱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신 구원자 그리스도는 낮아지고 종이 되는 메시아다. 이것은 완전히 반대다. 높은 곳에 계신 그리스도와 낮은 곳에 있는 그리스도는 완전히 반대다. 그러나 <낯선 그리스도>를 시작하면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둘의 차이에서 온전한 것은 당연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의 첫 열매이자 본체이기 때문이다. 본체가 전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왕이 될 것이고, 왕이 되신 예수님은 민생과 육신의 문제와 세상의 일을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로 만들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권세 있는 자리를 누리게 될 것이라 생각한 제자들의 생각이 드러나고 그 생각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낮아지고 종이 되는 존재임을 설명하시는 이 대화는 그리스도는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설명한다.


능력 있고 존귀한 존재일수록 왕과 같이 높아지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세상의 가치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존귀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니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신앙인들뿐 아니라 오고가는 모든 인류 역시 제자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귀한 것일수록 더 높고 존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은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종교 안에서 목회자나 또 어떤 은사를 행하거나 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목사가 되는 과정이 지극히 세상적 가치와 경쟁 기준에 의한 것이고, 능력을 행한다는 사람이 행하는 능력의 결과나 귀한 간증들 역시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 육신의 평안과 세상의 성공과 같은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대접한다는 것은 존귀한 그리스도는 세상에서도 왕과 같이 존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야고보와 요한이, 그 어머니가 예수님께 예수님이 왕이 되면 좌우에 앉게 되기를 바라는 생각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존귀한 것은 세상에 없는 가치, 세상과 전혀 다른 가치 기준을 가졌기 때문임을 선언하셨다. 세상 천하고 낮은 사형수의 자리인 십자가로 가는 것이 가장 존귀한 것이고, 가장 존귀한 자는 예수님과 같이 낮아지고 종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몸소 보이시고 선언하시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가지신 목적이 삶이 된 존재인 그리스도요 하나님 아들의 온전한 모습임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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