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징벌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앞서 설명했다. 이러한 하나님 심판의 속성은 몇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말씀을 강제하지 않으신다.

 

이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면서 사람들에 그 모습을 보고 선택할 수 있게 하심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천지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최면을 걸 듯 조정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의와 뜻을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어 보이시고 그것을 보고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뜻을 선택하게 하셨다는 점에서 확실하다.

 

따라서 빛이요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들이 되는 분명한 빛과 길을 보이신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심판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와 뜻을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심판이고 죄며 사망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떠나서 일반적인 우리의 사회에서도 명확한 이치다. 조직이 추구하는 바에 따르지 않으면서 조직 내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회사나 모임 등과 결별한다. 군에 있으면서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나, 회사에 다니지만 회사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힘들고, 또 스스로도 늘 힘들다고 말한다.

 

이것을 알고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늘 힘들다고 말하고, 인생은 고난이라 말하며 괴로운 인생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들이 알든 모르든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좇아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심판의 개념은 하박국에서 이방인을 통하여 율법을 해이하게 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된다.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을 심판한 이방인을 하나님께서 또한 심판하신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낮아지는 법이 아닌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의와 선으로 삼는 법으로 사는 이들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높은 곳에 있는 이가 낮은 곳에 있는 이를 심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세상의 가치를 좇고 육신의 정욕이 추구하는 것을 얻고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들의 생각과 달리 높은 곳을 향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수동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자기 육신의 정욕이 추구하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육신의 평안이라는 피라미드 높은 곳의 가치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가치관과 낮아져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은 반대다. 따라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자기들이 만든 우상일 뿐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생명이 되어 그 본성대로 살면 지켜지는 율법을 규칙으로 정하여 행위로 지켜 영혼을 의롭게 하려 한다. 하나님의 법과 방향이 분명히 반대다. 그런 믿음과 신앙은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모두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밖에 있는 일이다. 아니 하나님의 목적과 반대의 의()를 추구한다. 당연히 그 믿음과 신앙은 세상과 이방인의 가치다. 피라미드 의로 높아지는 것이 선하고 의롭다고 여기는 가치관 아래 있다.

 

따라서 그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 세상의 더 강한 자들, 더 높은 곳에 있고, 더 이긴 자들에게 늘 심판을 받는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설명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인을 일으켜 심판하시는 법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거센 저항과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같은 파이를 차지하려고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하게 세상의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상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를 포장하여 세상의 가치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것처럼 기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강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한 이들보다 더 높이 있다. 그래서 늘 세상의 가치로 심판을 받는다. 세상의 가치 아래 있기 때문에 세상의 심판을 받는다.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께서 그 교회 건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그렇다. 더 비싸고 좋은 것으로 치장을 할 때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것은 피라미드 위로 가는 것이 선하고 의로운 것이라 믿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더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그렇다. 교회를 화려하게 건축하는 이들이나 그런 교회가 같은 값이면 더 나을 것이라는 사람은 모두 세상의 가치 아래 있는 이들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교수나 박사나 성공한 사업가가 되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또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의와 법이 육신이 된 아들을 발견한 자리는 십자가다.

 

높은 곳이 아니라 세상 가장 낮은 자리인 사형수의 자리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사람은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 아들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업가나 박사나 정치인이나 선행을 베푼 이를 보고 하나님 아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다르고,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것과 세상의 가치가 다르다.

 

따라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세상의 가치를 좇아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영광이라는 믿음과, 크고 화려하며 웅장한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신앙 집단의 생각은 언제나 이방인들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