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성경의 창세기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 안으로 들어 오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천지가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가 그 사람의 삶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미지가 삶으로 녹아난 사람, 그 사람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이미지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표준이요 첫 열매이자 표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만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미지가 그 안에 열렸다는 것은 천지창조의 과정이 그 사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사람을 보고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의 천지창조이다.


이는 비단 창세기만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4복음서의 시작은 이런 면에서 창세기와 동일한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성경의 모든 처음이 마치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시작하고,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시작하며, 누가복음은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라고 시작하고 있으며,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시작하고 있다.






각 복음서의 시작에 <세계>, <시작>, <처음>, <태초>라는 도입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새로운 세계와 안목이 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성경들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어떤 세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라고 전제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요한복음의 경우 이것이 태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것이 태초이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1장에 보면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즉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이 예수님이 인생들이 복음으로 여기는 소식의 시작이라고 하고 있으며, 마태복음은 이것은 하나의 세계인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세계라는 것이며, 누가복음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 중에 이루어졌으며 우리가 그 말씀의 목격자라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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