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의 선택 - 선택의 대상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10. 19. 04:00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 근간은 사실 선택이다. 무엇을 선택할 수 없다면 자유도 없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상징하는 <선택>은 사람의 능력으로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이 한 것은 없다.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태어나 보니 그런 권한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지 자신이 선택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선택하는 능력과 결정하는 사고와 그 모든 것을 인지하고 행하는 것이 주체인 사람의 선택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사람을 조성하신 이의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조성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의를 선택하라고 주셨다는 의미이다.


또 선택이라는 것을 굳이 나누어 본다면 자기 의지에 의한 것이 있고, 본능에 의한 것이 있다. 당연히 본능에 의한 선택이 온전 하고 완전하다. 그 어느 순간도 선택하는 주체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어떤 선택도 개 같지는 않다. 선택하는 주체가 육신이 아니라 신분일 때도 비슷하다. 부모라는 신분과 같은 것이 그렇다. 우리는 그 신분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선택을 보면 ‘천륜’ 혹은 ‘인륜’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것은 정체성에 맞는 선택은 다툼이나 이견 없이 모두가 동의하고 하나로 정립된 정답 같은 선택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왜 그렇게 생명을 이야기하는지 여기서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모든 선택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때문이다. 거듭나면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존재 목적, 사람을 만드신 뜻을 선택해야 한다. 성경과 십자가로 보이신 거듭나는 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것을 선택하기 바라시며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 그 예비하신 것을 선택하면 그리스도로 거듭난 존재가 되고, 거듭난 생명이 가진 본성이 이끄는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결정을 늘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며,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자라나는 삶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이와 같으면 거듭나고 구원받은 영원한 삶에 들어간 것이고, 아무리 우기려고 해도 내 삶의 어느 한구 석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싶으면 미안하지만 거듭난 생명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직도 선택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한다면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거듭났으면 거듭난 생명의 본성 대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지 거듭났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 기도 했다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알고자 하는 혼합된 그런 것은 없다. 단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법이 그렇다.


물론 거듭난 사람의 삶에도 육신의 본능이 있고, 사람들이 정죄하는 삶의 모습도 있다. 본능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실 때 주신 것이므로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식도의 날카로움은 부정한 것이 아니다. 요리하는 사람에게 날카로운 본성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나 강도의 손에 들리면 날카 롭다는 본성이 사람을 헤친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억제해야 하는 육신의 본능이나 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본성들도 누가 주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거듭난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니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정죄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들고 경영하시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본성은 주인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선하게도 악하게도 된다. 사람이 가진 모든 본성, 식욕과 성욕과 화를 내는 것 그 모든 것은 누가 주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에 능함이 다윗에게 있으니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지만 골리앗에게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날카로움이나 전쟁에 능함도 선한 주인 아래 있으면 그 본성들이 주인을 높이고, 주인의 법 아래 있음을 나타내고 증거한다. 선한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 안에서 나오는 본능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법 아래 살고 있음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이들에게는 사람이 가진 본능이 부정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다. 화를 내는 것은 세상적으로 비난받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화를 낸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같다.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화를 내느냐의 문제임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다. 다만 누가 주인이 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선택 아래 있느냐의 문제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 4:3)


이 말씀은 자기 삶에 있는 꾸준히 허물로 보이는 것들,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육신으로 나서 보니 육신 안에 있는 욕망과 본능들이 정죄함을 받거나 금욕적인 절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주관하신 목적 아래 있으면 모두 온전하니 이것으로 정죄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세상의 법으로 정죄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말씀이다.


그렇게 정죄함 없는 자유를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선하다는 것과 사람의 모든 행위는 생명의 본성에서 나온다는 말씀이 자기 육신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설명한 죄와 본성과 생명과 행함에 대한 모든 것이 자기 안에서 육신을 통해 밖으로 넘쳐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삶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다.


그 삶이 있다면 모든 선택은 그리스도의 본성이 할 것이다. 모든 행동도 그 본성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될 것이고,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며, 그렇게 어렵던 ‘항상’, ‘범사’가 붙어 있는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이 다. 그 삶이 바로 질그릇인 사람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선택이다.


하나님의 의가 심령에 담겨 있어 육신의 삶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는 법으로 아들이 된 사람의 모든 선택은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님의 생명이 이끄는 선택이다. 그 선택의 연속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모든 순간 말씀대로 선택하고 행하게 될 것이다. 여기는 신념과 의지, 훈련과 같은 것 필요 없다. 생명의 본성이 이끈다.


그러므로 질그릇으로 창조된 우리 인생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의를 선택하는 것만이 바르고 의로운 선택이다. 이것은 본성의 선택이므로 본성이 있는 생명이 되어야 함이 먼저다.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이 우리를 십자가로 이끌고,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며, 지시할 땅과 약속의 땅으로 이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그 하나밖에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사람에게 그렇게 어려운 순종이 되었지만 그 순종을 선택하면 그 의가 우리 안에서 성령 으로 잉태되어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자라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날마다 사랑스러워지는 것이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