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주기도문 Date : 2013. 1. 31. 23:59 Writer : 김홍덕

악(惡)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9장에는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예수님께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시자, 바리새인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마 9:4)”라고 하셨다. 또한 마태복음 12장(22절 이후)에서는 예수님께서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시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기적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한 것이라 폄하할 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마 12:34)”이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는 위의 두 예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악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있는데, 이것은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참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또한 사람이 귀신의 힘을 빌려서 병을 고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대신해서는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악한 생각이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면서 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또한 사람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직임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예수님과 같이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실재로 많은 기적을 행하실 뿐 아니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고 물위로 걸으시기도 하셨지만 예수님은 한번도 제자들이나 사람들에게 그것이 그리스도의 조건이라고 하신 적은 없다. 그러시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은 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이것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가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게 예수님의 일이고, 우리가 그런 예수님을 대신하여야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면, 우린 오늘 다 예수 믿는 것 때리 쳐야 할 것이다. 누가 회사 일이나 가사 일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일로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좇아 살게 되므로, 십자가 밑에 섰던 백부장이 예수님을 보고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하며 예수님을 믿었듯이, 우리 중에 한 사람, 평범하고 기적을 일으킬 수도 없고, 특별히 신학을 하지도 않았으며, 세상적으로 전혀 성공하지도 않은 사람, 즉 인간이라는 그 본연의 모습 그 외에는 예수님처럼 흠모할만한 것이 전혀 없는(사 53:2) 사람이 한 사람을 볼 때, ‘너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고백하게 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되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대신하는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벌거벗겨지신 모습으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을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주는 모든 의복, 즉 신분과 학력과 재력과 권력을 다 내려 놓은 모습이 바로 벌거벗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큰교회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목사를 청빙함에 있어 신앙고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약력을 보며, 사람이 변하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겉모습이 자꾸 화려해져야 교회가 제 일을 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큰교회와 큰교회에 시무하는 목사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싶은 지경이 되려면, 교회의 그 모든 화려함도 다 빼고, 건물도 조직도 재정도 다 빼고 난 모습으로 있어도 교회가 되고, 목사도 신학박사라는 약력에서부터 자기의 모든 업적을 다 버리고 런닝 차림으로 다녀도 그를 볼 때 말씀을 듣고 싶고, 그를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의 직분을 대신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성품을 가진 자로 인정 받을 수 있어야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모든 생각이 바로 악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의 사고방식 안에는 초라한 모습의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있으며,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있느냐?라며 생각하는 그 생각을 예수님께서는 <악>이라고 하셨다. 만약 화려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이 그랬다면 그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찮은 목수의 아들이 거름뱅이 같은 모습으로 다니다가 사람의 죄를 사한다고 하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꼬라지를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니 더 화가 난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바로 악한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생각은 동일하다. 사람 안에서 사람이, 그것도 세상적 가치관 안에서 전혀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대신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여 사람들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죄하는 생각은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악>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할 그 악함, 즉 육신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에게 안식과 죄 사함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은 육신을 가진 인생이 원래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하나님의 아들로 예비되었고, 그렇게 평범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가면서 까지 말씀하셨는데, 평범한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하니, 그것이야 말로 선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부인하는 악한 생각이요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주기도문에 나오는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라 하심은, ‘인생이 세상적으로 위대해져야 그리스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과, 연약하고 볼 품 없는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여기는 모든 생각에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세상에 <악>은 오직 그것 하나 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선하신 것처럼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