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3:1-13) 하나님의 심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8. 1. 08:42 Writer : 김홍덕

모든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심판의 본질적 대상은 하나님의 의에 반하는 의로움과 그 의에서 비롯된 형식이다. 형식이라고 하는 것은 말과 행동, 의복과 예식, 규례와 법과 같은 것이다. 특히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벗어난 의와 뜻과 생각이 심판의 대상이고, 그 의와 뜻과 생각이 표현된 삶의 모든 요소와 행동이 심판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을 대할 때는 자기 심령에, 속사람에, 의와 생각에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심판은 육신의 혈통이나 행위가 아니라 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도적질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에 의로움을 부가하여 남의 것까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의는 생명이기 때문에 일부만 의롭거나, 일부만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심판의 대상은 겉으로 드러난 혈통이나 행위가 아니라 속에 있는 의로움, 즉 무엇을 의로 삼고 있는지가 심판의 대상인데 그것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 안에 있는 의로움이라는 것이 반은 의롭고, 반은 불의하지 않고, 반은 하나님의 의를 반은 세상의 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는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반반인 생명은 없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모습의 근본적인 이유도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신을 섬겼다”고 늘 진노하시지만 사살 대부분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제사를 드리고, 규례를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방신을 섬겼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절기와 규례를 지키는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세상에서 평안하고 성공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형식은 하나님을 섬기나 그 섬김의 목적은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가 바라는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날도 동일하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고 쫓아내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곳이지 장사하는 집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 역시 형식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나 그 목적은 육신이 원하는 것, 곧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것이고, 세상의 가치관이 좋다고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 기만하여 하나님께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나님의 규례와 말씀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규례와 말씀을 지키는 행위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얻으려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변함 없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가치가 다 세상에서 왔다. 비싸고 좋은 자재로 교회를 건축하고, 그 속에 비싸고 좋은 치장을 하고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일상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가치로 좋은 것이 곧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라 생각하는 세상의 가치관에서 온 것이다. 가치는 세상에서 가져오고, 섬기는 대상은 하나님인 것처럼 섞어 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전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모습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는 것이 세상의 가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수의 사람들이 그런 가치로 하나님을 혹은 다른 신을 섬긴다. 그것이 메뚜기 떼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대상이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근본이다. 그러니 그것이 재앙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육신의 혈통이 이방인이어서, 아니면 기독교라는 종교 집단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행위로 성경을 어기면 받는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메뚜기 떼와 같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세상의 가치관 위에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앙과 믿음이 심판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반반이 될 수 없다. 생명은 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고양이면 고양이지 반은 고양이, 반은 개인 동물이 없다. 반인반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여 생각과 말과 삶과 가치와 의 그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의와 사람을 지으신 목적 안에 있든지, 아니면 세상의 가치에 있든지 둘 중의 하나다. 하나님은 당연히 순전한 것을 받으시므로 하나님의 의와 세상의 가치가 혼합된 것은 받지 않으신다. 그것은 메뚜기 떼로 인하여 제사가 없어졌다고 하심과 같이 온전한 제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우리 자신의 속심령과 삶을 이끄는 본성과 목적이 하나님 의로 거듭나서 그 생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를 돌아 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신앙의 어떤 일부가 육신의 평안과 세상의 성공을 도모하는 것에 있거나, 세상의 가치로 좋은 것이 곧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라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면 자신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마저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을 깨달아 자신이 그간 살아온 모든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구원은 없다.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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