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2:12-20)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6. 24. 11:15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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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 속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벗어났다는 기본적인 정의(定義)와 배경이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라 하신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교회에서 그렇게 많이 들었던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이 어디로 돌아오라는 것인지 얼마나 생각해 봤을까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자리,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되어 그 본성대로 살아가도록 육신의 삶을 드리는 제사이자 순종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그것을 생각해봤을까 싶다.


그런 맥락에서 아주 짧은 이 요엘도 결국은 그 주제 안에 있다. 메뚜기 재앙, 곧 사람이 자기들이 좋다고 세를 이루어 추구한 인생이 재앙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라시고, 자신이 재앙에 처했다는 것은 정말로 어둡고 캄캄한 상황이나 바로 그때가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자리, 자신의 의와 인생이 하나님의 의에서 벗어난 재앙이요 어둡고 캄캄한 곳이라는 것을 탕자와 같이 알았다면 그 다음은 정해진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비로소 성경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이 들리고 자신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알기 시작하는 인식, 곧 빛이 비취기 시작한 태초의 시점이기도 하다.


사실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결정하는 것은 일생 일대의 결정이다. 교회에 다니다 보니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말이 익숙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로 일생 일대의 사건일 뿐 아니라,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던 것,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을 바로 사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재앙이었음을 인정하는 다음 스텝인데 그것이 교회에 등록해서 교리문답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것은 사실 표현 그대로다.


살아온 인생이 전쟁 속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감옥에 갈 만한 일을 저지르거나 큰 상해나 사건 뿐이었다면 그나마 자기 삶이 재앙이라고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겠지만 그 정도가 아닌 삶을 살았는데 진심으로 그것이 재앙이었다고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고 돌이킴이다. 그것이 교리문답에 답하는 것으로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이면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기’일 뿐이다.


요엘은 말한다. 거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진리고 선이면 보편적 상식이고 도덕이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영광이라 여겼던 지난 날의 자신의 삶이 재앙이었고 진정한 어두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옷을 찢으면 풍기문란이 되니 옷을 찢지 말라고 하심이 아니다. 옷은 형식이고, 자기 신분이다. 즉 자신이 세상의 가치를 좇아 성취한 것의 상징이 옷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다. 본질은 자신이 입은 옷이 상징하는 것을 추구한 자기 마음이다. 그 옷을 입기까지 자신이 옳다고 추구한 뿌리인 본성이 본질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성경을 기본적으로 ‘육신의 정욕’이라고 한다. 그리고 요엘은 그 육신의 정욕을 대부분의 사람이 추구하니 메뚜기 떼로 말씀하고 있다.


결국 옷이 아닌 마음을 찢으라는 것은 자신의 의, 자기 본성,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추구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재앙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삶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을 찢은 사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생각하는 것이 재앙이라 여기는 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을 보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가 추구하는 것을 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로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은 항상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시끄럽고 갈등할 뿐 아니라 전쟁도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다툼만 봐도 그렇다. 교회가 분열 될 때, 또 서로 싸울 때 그 어느 한 쪽이 자신들을 마귀라고 하거나 잘못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서로 옳다는 것이 충돌해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부의 이야기고, 친구들의 이야기고, 삶의 이야기고, 사회 계층 간의 이야기다. 그만큼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삶의 대 전환적인 일이라는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교회에 등록하고 교리 문답에 답하고 열심히 해서 집사, 권사, 장로가 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과정도 알고 보면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좇는 궤도 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구분이 되지 않는 사람은 바로 빛이 없는 어두움에 속한 자식들이다. 이것이 보인다면 예수님이 빛으로 온 사람이고, 태초에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한 빛이 비췬 사람이다. 그러나 메뚜기 떼와 같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삶의 모양과 행동을 바꾸는 것인 옷을 찢은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을 찢은 사람이 정말로 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옷이 아닌 마음을 찢으라고 하신 것을 예사롭게 보면 안 된다. 이것은 인생을 바꾸라는 말씀이다. 자신의 의가 바뀌는 것이 곧 인생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옳다고 여긴 것,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기에 좇았던 것들이 재앙으로 보이는 사람이어야 이 말씀대로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옳은 것이며, 바른 인생이라 여기며 위로하고 추구하는 삶이 재앙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그 어둡고 캄캄한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