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8-12) 끊어진 제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6. 13. 10:52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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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서에 나오는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결과의 핵심은 곡식의 훼손으로 인한 굶주림이 아니라 하나님에 드리는 제사가 끊어졌다는 것이 핵심적 주제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가지고 구하는 것, 그것이 마음이든 재물이든 시간이든 그 어떤 것을 드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제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한 번쯤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과연 제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육신으로 살면서 육신이 취할 수 있고, 자기 생각에 하나님께 드리면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간과하면 안 된다.


따라서 이 진리를 알고서 제사가 끊어졌다는 것은 메뚜기 떼로 인하여 곡식이 끊어지고 이를 인하여 가축도 죽게 되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소와 양이 없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제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에 순종하는 것, 즉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포도나무와 같은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예수님이 구하신 무화과나무의 열매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이 사람 안에 들어와 속심령에서 생명이 되어 거듭난 생명이 되고, 그 하나님 의의 본성이 육신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속심령에 들어온 하나님의 의를 생명으로 잉태케 하시는 분이 성령이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리고 허락하는 것은 오직 자기 심령에 하나님의 의가 자리하도록 순종하는 것 그 하나뿐이다. 그 순종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의 뜻이 땅(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 이루어지기를 기도(순종)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만드신 금과 은 같은 세상의 어떤 것이나,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의 시간이나 가치와 같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든 목적에 순종하는 것이다.


메뚜기 떼, 즉 많고 크고 위대한 것을 선으로 여기는 대중적인 신앙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끊어지게 했다고 하심도 바로 이 온전한 제사의 개념 위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메뚜기 떼와 같이 많고 크고 위대한 것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것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도적절에 가깝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 그것은 공장의 물건을 사장에게 선물하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다. 이 모든 것으로 보아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은 사람이 추구하면 선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제사다. 십자가는 낮아질대로 낮고 사람들이 가지 않는 좁은 문 너머에 있다. 그것이 온전한 제사인데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은 사람이 추종하는 것이 선하고 옳게 여기는 신앙이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사가 끊어졌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