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1-7) 포도주가 끊어지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6. 9. 09:13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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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재앙이 가져온 결과에서 특히 포도주가 끊어진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선지서에서 재앙을 선포하는 것에 비해 눈에 띄는 대목이다.


포도주와 포도나무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라고 하심이나,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라고 하신 것에서 이것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의미함을 확신할 수 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 아들이 무엇인지를 보이셨고 이를 사람들이 보고 들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 십자가의 의미가 사람 안에 심기고 인식되는 것이나, 포도를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상하신 것과 같이 짓이겨서 짜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궤를 같이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사람 안에 심겨서 그것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 되면 그리스도로 거듭난 또 하나의 예수님과 같은 a christ가 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고 그것에 취하는 것이 바로 포도주에 취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포도와 포도주는 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 메뚜기 재앙이 온전한 그리스도를 마시는 것, 즉 그리스도의 성품이 사람 안에 들어가서 취하게 만드는 일이 메뚜기 재앙을 인하여 그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아는 것에 심취하지 않고 그냥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묻혀 가는 현상이 바로 메뚜기 재앙과 그로 인하여 포도주가 끊어진 것임을 요엘서가 말씀하고 있다.


이를 오늘날 현상적으로 한 번 보면,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구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세상에서의 이김인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지금의 신앙이 포도주가 끊어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법으로 “너 같이 천한 것이 하나님 아들일리 없다”는 심판을 받아 세상의 가장 낮은 신분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를 지셨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낮아진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대중성에 의지하고 있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먼저는 사람들 스스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와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대중성에 기대어 자기 안에 있는 온전하지 않은 믿음의 퍼즐을 마무리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아직 노력 중이라는 것은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들이나, 또 생명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생명으로 나는 것이다. 아들이면 아들이지, 아직 더 노력해서 아들과 같이 되려고 한다는 것도 몰상식한 사고이고, 사람이 날 때 사람이지 나서 노력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님에도 거듭난 생명이라면서 온전해지려고 노력한다는 모순에 매몰되어 있음에도 그것이 신학이고 신앙이라는 대중성에 의지하는 모습을 포도주에 취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이 온전하지 않음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신과 동일한 사람들이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메뚜기가 포도나무를 상하게 하여 포도주가 끊김과 같이 그리스도를 찾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신앙이 바로 메뚜기 재앙을 당한 것임을 요엘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