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13-20) 장로들아 부르짖으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6. 20. 13:24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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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에게 또 제사장들에게 슬퍼하라고 하신 것이 슬퍼해야 할 상황인데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듯, 장로들에게 부르짖으라고 명하신 것 역시 부르짖어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슬픔이나 간절함이 바탕이 되는 부르짖음은 본능적인 것이지 명령에 의해, 또는 작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거민을 모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씨, 생축, 소, 양 모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모든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천부께서 알아서 기르신다”고 하셨다. 즉 그들의 먹을 것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끊어졌다? 그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피지 않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멸망이며,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 있는 멸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말론과 궤를 같이하는 멸망과는 다르다. 현상적으로는 육신의 생명이 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언제나 현상은 보이지 않는 본질이 나타난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먹이신다고 하신 것이 죽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먹이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먹이지 않으신다는 것은 생축과 식물과 양과 소의 존재 목적이자 먹이시는 목적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의 본질인 하나님께서 창조한 목적이 소돔과 고모라의 때 10명의 분량만이라도 남았다면 진멸 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사와 궤를 같이한다.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관하시는 것에 자신을 내어 준다는 의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주관하신다는 것은 그 뜻하신 목적과 의도대로 주관하시는 것이 근본이다. 따라서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뜻하신 것을 나에게 이루시게 우리 자신이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뜻이 땅(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하는 목적이 사라지는 것이 종말적 멸망이다. 그 보다 더한 멸망은 없다. 사람도 존재이므로 당연히 그 법 아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다. 사람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이 “스스로 있는 자”인 의미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것의 목적을 계획하고 경영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이 믿음 위에서 모든 것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제물로 드리면서까지 보이신 사람의 존재 목적을 버리고 자기들 무리를 모아 그 허다함이 좇는 것에 인생의 목적을 두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의로 그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게 멸망이다. 멸망은 육신의 평안이나 세상에서의 성공적인 삶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목적에서 떨어진 것이다.


요엘서는 하나님께서 장한 사람의 자리를 떠나 대중성에 기대어 크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멸망이니 그 멸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로들에게 거민을 모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명하고 있다.


땅의 거민, 땅에 거하는 사람은 하늘에 종속된 사람이다. 땅은 하늘이 변하는 것에 따라 변하고 순종한다. 하늘이 따뜻하게 되면 땅이 여름이 되고, 하늘이 차가워지면 땅이 겨울이 된다. 그리고 땅에 속한 모든 것 역시 땅이 하늘에 순종한 것에 따라 순종한다. 하늘이 차가워지면 땅이 겨울이 되고, 땅의 모든 것은 겨울에 맞게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그리고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의를 상징하는 대명사다. 즉 하나님의 뜻에 땅에 거민은 기본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것 아니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장로는 이러한 것을 오랜 세월 겪고 그 가운데서 지혜를 얻은 자다. 요엘서를 시작할 때 나오는 늙은이들과 교집합의 사람들이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찌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찌어다 …”(욜 1:2)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세우신 뜻을 사람이 버리고 사람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들이 떼를 이루어 추구하는 것을 좇을 때 일어나는 일을 보았으니 그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께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한 뜻에 순종하겠노라 구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 이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메뚜기 떼로 인하여, 육신의 정욕을 좇아 세상의 가치를 좇는 허다한 무리들의 가치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고, 하나님께서 생명이라 여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이라 여기는 것이 없으면 세상을 경영하시는 목적이 상실된 것이고, 본질인 하나님의 목적이 상실된다면 눈에 보이는 세상 속, 육신의 생명 또한 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기에 땅에 거하는 거민은 이 지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구하라고 명하신다는 것 조차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실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