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7-24) 새 사람을 입으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베소서 Date : 2019. 7. 9. 10:34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로 장성함이 충만해지기를 권면하면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고 권면의 한 절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새사람이 어떤 생활의 모습을 보이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과 궤를 같이 하는 말씀을 자주 말하는 편입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신앙의 유익한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새로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깊이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삶, 더 성실하고 착한 삶,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삶으로 이루어낸 성공과 같은 것을 새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늘 언급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추구하던 것을 하나님을 믿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그 추구하는 것의 동력을 삼아 더 잘 이루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부활도 거듭남도 아닙니다. 주판으로 하던 것을 계산기, 컴퓨터로 하는 것일 뿐 전혀 새롭지도 않고 거듭난 새 생명도 아닙니다. 썩은 고기 먹다가 신선한 고기 먹는다고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듯.


바울 사도는 ‘새 사람’에 대하여 분명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가르침을 받음을 인하여 유혹의 욕심을 버리고 썩어질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이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새 사람’은 심령에서부터 새롭게 되는 사람입니다. 즉 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인하여 밖으로 그것이 나타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속사람의 변화는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이 에베소서 내내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 곧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세상의 가치로는 죄인이 되는 정체성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어 세상에서 성공해서 그 성공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려는 것과는 전혀 반대인 것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에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자기 속사람이 되어 그 거듭난 속사람으로 새롭게 된 삶으로 거룩함, 곧 구분된 삶으로 지음을 받은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새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행실을 바꾸고 그 바꾼 행실을 바탕으로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새 사람이 아닙니다. 도덕이든, 사회, 경제적 경쟁능력이든, 종교적인 신령함이든 더 많이 가지고 높이 오르고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가치관 안에서 이전에 그 가치관이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이나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예수 믿고서 그것을 추구하기에 합당한 경건하고 성실한 모습이 되어 결국 그 높은 곳에 이르게 되기도 하는 것을 ‘새 사람’이라고 성경을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설명하는 새 사람도 그런 요소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그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가치 기준이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롭다고 하시고, 거듭난 생명이라 하시고, 부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하나님의 의에서 떠난 사람이 그 의를 회복한 것이 새로운 삶입니다. 이것은 이의가 없는 분명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보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말씀하시는 성경을 보면서 자신들의 가치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하늘에서 말구유로 보내셨고, 천한 자들과 먹고 마시다, 세상 최고의 실패자요 죄인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를 지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이 내려가고 낮아지며, 육신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하여 종이 되고, 세상의 가치에 의하여 죄인이 되는 것이라고 보이셨는데,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힘입어 세상의 가치기준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 선하고 착하다고 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런 세상의 가치관을 좇는 것을 유혹의 욕심이자 썩어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유혹은 하나님의 아들은 초인적이며, 세상 가치관에 의한 경쟁에서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라는 유혹이라는 것을 앞서 많이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의 그 유혹들이 바로 사람들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 경쟁력에서 더 뛰어난 존재여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의 근간인 하나님의 의가 말씀하시는 진리와 의와 거룩함은 세상 가치관과 반대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옳다고 여기는 자가 의인이 되지만 하나님의 의는 의로운 자가 죄인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바로 의인이 죄인의 주장 앞에 죄인이 되어 섬기므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게 하시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그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의 본성대로 육신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씀에 이어 새 사람의 행실에 대하여 말씀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도 그 하나님의 의로 거듭난 생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을 설명한 것이니 지켜야할 가이드나 규칙으로 그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언제나 속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생명이 본성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듯 하나님의 의로 거룩함을 입은 새 사람의 삶은 성경을 보고 새 사람의 행실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 심령이 그 삶을 이끌므로 자기의 육신이 소비됨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듯 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 사람의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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