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선이며, 그리스도는 당연히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것이 세상의 가치관이다. 예수님은 그 가치관 앞에 그리스도는 죄인이 되는 낮은 자리로 끌려가는 본성이 삶이 된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보이셨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일으킨 문제 앞에 죄인이 되어 종과 같이 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다. 그 낮은 자리는 누구도 스스로 가지 않는 곳이나 그리스도의 본성은 그에 끌려가는 것에 순종한다. 


문제는 예수님은 끌려가지 않을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끌려가셨다. 사람들은 이것은 예수님의 의지, 신념을 인함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한 사랑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은 자신들의 신앙이 의지와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종과 같이 낮은 자리에서 섬기라고 하신 것은 의지적 관점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거듭나라는 생명의 법을 말씀하심이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가진 본성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갔음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성은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면서 낮아지는 것에 순종한다는 것은 육신의 의지로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기를 하나님께 구하면서 십자가와 같이 낮은 자리로 가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신앙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 외식이고 하나님의 기만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지키는 공로를 드려서 세상에서 이기는 것을 구하니 장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낮아지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성령으로 잉태되는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군병에게 또 십자가에 끌려가신 것이 그리스도의 본성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났을 때만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질 수 있다. 낮고 낮은 십자가를 지려는 의지와 신념이나 능력은 본성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무생물과 생명의 차이다. 흔히 십자가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리스도의 본성이란 말이다.


어린 아이를 부모가 당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모라는 본능 때문이듯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성품은 다른 것이다.


하나님도 같다. 아들이 그렇다면 아버지도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사람들의 일에 기적으로 나타나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본성은 십자가로 표현된 그리스도의 본성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에 사람의 육신 가진 삶이 얼마나 온전한지 십자가가 보여준다. 높아지려는 가치관과 마주했을 때 높아지지 않고 낮아지는 것에 순종하는 본성, 그것이 그리스도의 본성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다. 


높아지려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낮아지는 세상이다. 본성에 이끌리는 것이라면 자기 의지로 낮아지려 하지 않아도 되니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짐은 참 쉽다. 반대로 육신이 자신의 힘으로 늘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의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자의가 아니라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렇게 끌려가는 것에 순종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본성이다. 본성은 생명에 종속된 것이므로 그 생명으로 나야 한다. 그래서 거듭남이다. 그리고 그 거듭난 자리는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의 자리이므로 구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죄인의 신분이 된 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이유다. 다르게 표현하면 나사렛에서 난 천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법 때문이다. 높아져야 선한 세상의 가치관이 생각하는 하나님 아들은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높은 위엄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하고, 육신의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죽은 자도 살리더니 그것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며 정작 자신은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을 높은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 없다.


반면에 예수님은 그들의 법 앞에 자신을 내어 주었다. 그들이 옳다는 것에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하라고 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그리스도의 본성이 그렇게 끌고 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본성이 곧 하나님의 의고 말씀이며 뜻이다. 그것이 육신이 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면 되는 것이지, 아직 없는 것을 성취시키는 것이 아니다. 


향유 옥합 안에는 이미 향유가 있었고, 그것이 깨어져서 향기가 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자신의 장사(葬事)라고 하신 이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하신 것은 십자가를 져야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거나 성취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옥합이 깨어지기만 하면 향기가 나듯, 예수님의 육신이 깨어지기만 하면 하나님의 물(말씀)과 피(생명)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고 그 뜻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하심이 이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니 세상의 높은 관직을 가진 백부장이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성경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설명한 것이므로 그 본성대로 살면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행위로 성경을 지켜서 그리스도가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부터 이미 성경은 온전하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성경을 예수님께서 의지로 순종하므로 완성한 것이 아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으로 보이신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성품을 기록한 것이니 예수님은 그렇게 되어야 할 뿐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러함과 같이 당연히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지와 신념으로 십자가를 지려고 하고 성경을 지키려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거듭나기만 하면 그 본성이 이끈다. 그게 생명의 법이고 거듭남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해도 늘 실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자신들이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도와 성경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육신이 약하다면서. 의지와 신념이 아니라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자기 의지와 신념을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예수님과 같은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옳은 것을 관철시킨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신 것은 그리스도의 본성이 끌고 가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난 인생은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한 섬김을 육신으로 감당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존재다. 그것이 우리에게 육신으로 사는 인생을 주신 이유고 목적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십자가는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