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1-7) 남편과 아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Date : 2018. 4. 24. 07:49 Writer : 김홍덕

남녀가 결혼을 하므로 남자는 남편이 되고 여자는 아내가 됩니다. 남자와 남편이 다르고, 여자와 아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부부가 된 남편과 아내는 세상의 모든 이성중에서 자신의 짝이 된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여자가 되고, 남편은 아내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남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은 남편인 남자를 아내가 있는 남편으로 만들었고, 남편 또한 아내에게 그러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내용과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용인 하나님의 의가 그 의를 나타낼 수 있는 형식인 사람과 하나가 될 때 안식이 되듯, 남편이 된 남자는 더 이상 여자를 찾지 않아도 되고, 여자 또한 아내가 되면 남자를 찾지 않아도 되므로 다시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역시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게 되면 더 이상 신을 찾거나, 인생의 곤고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고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안식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삶이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거듭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형식을, 형식은 내용을 찾지 못하여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용 혹은 형식을 찾아 헤매다 하나가 된 다음에는 내용은 형식을 통해, 형식은 내용을 통해 자신을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삶의 목적과 이유를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어 안식하고, 그 알게 된 존재의 목적대로 살게 되는 새 삶을 살게 되는 것과 같이, 남자와 여자도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짝을 만나기 위하여 삶을 가꾸며 기다리고 순례하듯 하다 남편과 아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정을 통해서 그 섭리를 설명하고자 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 남편의 본성을 가진 자손을 자신의 몸으로 잉태하여 낳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듯,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자기 육신으로 살아내어 그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말씀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 안에 이런 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만드신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용과 형식으로 되어 있고, 사람이 또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태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품 속에 있던 것이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가 부부에 대하여 권면할 때 아내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라는 것도 다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 모두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여자와 아내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가진 그 육신의 삶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형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전의 자기 삶이 여자였다면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변화된 삶은 마치 여자가 성이 다른 아이를 낳듯 이전과 다른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들 역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안다면 당연히 그들이 육신으로 사는 삶 중에 자신들이 의를 가진 존재로서 아내를 통하여 그 의를 가진 아들을 얻는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사랑하셨는지, 그 본성과 품속에 있는 의를 표현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낮아지고 사람을 사랑하셨는지를 알 것이기에 아내에게 또한 의에 있어 여자와 같은 존재에게 어떻게 섬기며 살 것인지 알 것이기에 그것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남자와 여자들에게 이 비밀을 전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 법 아래에서 보면 아내가 어떤 치장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머리를 꾸미고 금으로 치장하며 좋은 옷을 입을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결혼 했으니 다른 남자에게 예뻐 보일 이유가 없으니 몰골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자와 형식은 남편과 내용이 거할 그 속사람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아내에게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치장하라고 한 것이나 베드로 사도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하신 것이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존재 의미로서 여자요 신부가 되는 모든 인생이 그 육신의 것으로 이루어내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할 것이 아니라 속 심령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법을 안다면 육신으로 남편인 사람은 아내를 사랑할 것이고, 육신으로 아내된 사람도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남존여비라는 적폐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으로 부부가 되어 살면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했으니, 또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그렇게 해야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고, 상을 받으며, 벌을 받아 불행한 일이 생기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이미 그 마음이 순종도 사랑도 아닌 상태인데 그래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특히 남편들을 향한 권면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식’ 바로 이 법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연약한 아내를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귀히 여긴다는 것은 비단 육신으로 약한 자들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서 아직 그 삶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영적으로 연약하나 자들 앞에서 의인으로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같이 오히려 그 약한 자들을 귀히 여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한 ‘애매히 받는 고난’과 같은 것이며,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본성이 되고 생명이 되어 그 육신으로 나타나는 법 아래 있는 사람을 향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들을 자격과 본성을 가진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권면한다는 것은 곧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므로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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