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교회의 성탄절 기만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21. 12. 24. 15:18 Writer : 김홍덕

다시 성탄절이다. 크로노스 시간 안에서 다시온 성탄절은 이상하지 않다. 달력으로 또 성탄절이 되었다.

 

성탄절을 맞아 교회들은 분주하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 바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성탄절이 세상의 유흥절이 된 것을 한탄한다. 목사들은 그렇게 설교하고, 교회도 그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예수님이 오신 것에 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 성탄절이 축제인 교회와 목사가 의미를 상실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이다. 그러나 그건 예수님의 모습이고 정작 성탄절을 축제로 여기는 기독교인들 자신에게 예수님이 오셨느냐의 문제는 다르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신을 가진 우리 모두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그게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다. 따라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은 그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목사와 교회는 그렇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자신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선 예수님이 오신 목적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고, 다시 태어난 생명은 그리스도기 때문이다. 즉 성탄 본연의 목적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태어난 생명이 그 생명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탄절은 그런 자각이 있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축제다.

 

따라서 말이나 그럴 것이라는 신념 외에 자신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는 확신이 없다면 성탄절은 어차피 유흥의 계절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에겐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달력으로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은 언제나 다시돌아온 성탄이다. 아직 성탄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다시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오히려 교회의 성탄절은 세상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보다 더 나쁘다. 성탄 본연의 목적이 자신들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세상을 향해 성탄절을 유흥의 계절로 즐긴다며 한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성탄절 기만이다. 예수님께서 괜히 눈에 들보를 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성탄절 기만은 곧 목사와 교회의 기만이다. 특히 목사가 문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늘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 도달하는지나 말해야 하지만 그것도 없다. 가봤거나 도달했다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도 가보지 못한 자리에 가라고 교인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것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단순한 상식이다. 성탄절의 의미대로 자기 심령에 예수님이 오셨고, 그 예수님이 자기 안에서 자신을 거듭난 생명이 되게 하셨다면 그 자신이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다. 그렇게 되는 것이 성탄절의 목적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모두 자신이 거듭났다고 생각한다. 거듭났는데 왜 아직도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사람으로 났는데 다시 사람이 되려는 것처럼 멍청한 짓인데, 그것을 교회가 특히 목사가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을 향해서 거룩한 성탄절을 유흥의 계절로 즐긴다고 말한다. 멍청한 기만이다.

 

그리스도로 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노력은 당연히 필요 없다. 개로 나면 죽을 때까지 개다. 천 없는 수를 써도 고양이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일 수는 있어도 개라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게 생명이다.

 

그리스도도 생명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생명으로 여기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그리스도로 났는데 왜 다시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을까? 목사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구원 받았는데 그 사람들이 아직도 예수님처럼 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의 무능? 사람들의 무지? 뭐가 됐든 자신은 예수님처럼 되었나? 예수님처럼 되었다면 사도들처럼 나를 본 받으라고 했겠지만 여전히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예수님처럼 되라고 말한다. 언제까지 해야 하며, 되었을 때 어떤지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이 이르지 못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스도로 났는데 왜 다시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을까?

 

성탄절이 축제가 되려면 적어도 자신이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상태만이 자신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성탄절은 기념일이지 다시온 성탄은 아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처럼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처럼 났기 때문이다. 죽을 수는 있어도,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그리스도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 성탄을 유흥의 계절로 여긴다며 세상을 비난하는 목사와 교회는 삯군 목자고 회칠한 무덤일 뿐이다.

 

이렇듯 목사와 교회들은 자신에게도 오지 않은 예수님을 왔다고 믿으면서 기념하므로 예수님을 기만하고, 자신들에게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성탄절을 즐긴다고 세상을 비난한다. 우선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자기 심령에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진정한 성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