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에 가서 보니 성전에 많은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 드리는 사람이 직접 흠 없고 점 없는 소나 양과 같은 제물을 가지고 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당시에는 성전에서 직접 제물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특히 비둘기와 같은 작은 제물이 그랬다.


그것은 당시로는 거의 관습으로 고착되었거나 고착화 되는 과정에 있는 일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드는 것이라고 책망하시고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다는 것이다. 그런 예수님을 보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가뜩이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며 환영 받은 것도 못마땅한데 그들 눈으로 볼 때 성전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 같은 예수님 때문에 잔뜩 화가 났고, 이에 예수님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다윗의 자손'이라며 환호하는 소리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시편 8편 2절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답하셨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시 8:2)

이 예수님의 말씀은 다윗의 자손이여 라며 환호한 사람들의 말이 결국 그대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정말로 다윗과 같이 왕이 되실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과 같이 왕이 되시고 또 대제사장이 되셨다. 바로 그런 예수님께서 지금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엎고 크게 책망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것이 선하심으로 믿는 이들의 눈에서 책망이지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거의 난동이나 마찬가지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단순히 행동으로만 사람을 보는 유대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전혀 왕과는 무관한 행동을 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왕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제사 제물을 파는 상을 엎으시는 것은 사람들이 제사를 의무적인 형식으로 여기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도 하나의 행동 양식과 유대인으로서의 의무적인 예식(형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당연히 행동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볼 때 사람들 장사하는 상을 엎어 버리는 예수님의 행동이 어떻게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모습이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 온전한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행동은 온전한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짐승을 사고파는 것 때문이 아니다. 단순하게 성전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얻는 장소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사를 형식으로 여기는 마음이 문제다. 사람들이 제사를 형식으로 여긴다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행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용납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것, 형식적인 것, 또한 (선한) 행동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공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본질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이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려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제사와 또 삶의 목적과 의미의 본질이시다. 제사의 여러 규례가 왜 그런지, 왜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성전이 왜 있는지, 성전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의 본질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면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것도 그것이다. 또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사람의 본질인 존재의 목적 곧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기도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또한 성전은 모든 사람의 예표이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겠다고 하신 것은 벽돌로 지은 건물에 하나님이 계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겠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육신이 성전에 비유되었듯 모든 사람이 다 벽돌로 지은 성전과 같이 하나님이 거하시기 원하시는 그릇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할 형체를 가진 존재이듯 성전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형체를 가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신 안에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듯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시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 그것인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본질인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삶의 목적이자 내용이자 생명인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제사이고 살아 있는 제사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이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성전의 본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고 또 그 안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신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과 같이 그 심령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적이 있어 그것으로 살라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최종적인 모습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은 그런 하나님의 의와 뜻은 전부 어디로 가고 형식만 남은 것이다. 제사의 본질인 예수님이 왔는데도 형식을 주장하고 있고, 예수님과 같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살 때 비로소 표현되는 삶의 모양과 행동양식을 내용은 없이, 예수님은 알지 못하면서, 또한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와 본질을 구하는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그저 선한 행동을 구하고 형식으로 제사를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기에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성전에서 팔고 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 아니라 모든 만물이 고대하는 분이시다. 그것은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을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LOGOS : 뜻)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모든 만물과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뜻이 자기 존재의 목적이 되는 것을 바란다는 것이다.


성전도 그렇다. 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원하셨는지를 예표하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즉 성전이 있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먼저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뜻이 먼저 있기에 성전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뜻은 저버리고 형식만 지키려고 하다 보니 성전에 가서 돈을 주고 제물을 사서라도 제사를 드리려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진노하신 이유인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은 사람의 몸과 삶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의와 뜻을 표현하는 삶이다. 그 뜻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이고, 사람은 그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 제사이고 우리 몸이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의와 뜻을 몸소 보이신 하나님의 본체이자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제사가 오늘날의 예배다. 굳이 제사와 예배의 연관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오늘날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는 것은 이 예배 또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한 어떻게 드리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뜻을 오늘 깨닫는 것이 바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배는 순서나 격식이나 옷을 어떻게 입느냐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또 몇 시 예배를 드려야 주일을 성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바보들의 이야기다. 수백억짜리 교회에서 대단하고 화려한 격식의 예배를 드렸다고 주일을 성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교회를 화려하게 건축하고 형식이 혹시 누락되거나 틀리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책임자를 찾고 하는 지금의 모든 형태가 바로 성전에서 짐승을 사고파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즉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배의 본질이고 또한 성전의 본체였듯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의와 뜻과 말씀이 자신의 육신이 되었을 때 비로소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 삶이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듯 하나님의 뜻이 자기 안에 거함으로 그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는 삶을 사는 것이 예배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없다면 매일 새벽 예배를 평생 드리듯, 주일날 예배는 순서대로 다 드린다 해도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시듯 장사꾼들을 내치신 것은 성전에서 부정한 짓을 하지 말라거나, 교회에서 장사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정하신 목적이자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이 사람 안에 없으면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안에 있음으로 표현되는 모든 율법의 모양과 제사와 규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이 말씀의 본질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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