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20) 군대 귀신(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7. 11. 12:44 Writer : 김홍덕

우리에게 군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일로 알려진 예수님의 치유를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야기에 앞서 귀신 들린 상태의 정의를 다시 정리하고 가면 좋겠다. 귀신 들렸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듯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데 성경이 말한 온전하게 육신의 삶을 주관하는 정신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따라서 자주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목적 아닌 세상의 가치와 같은 다른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이 귀신 들린 것이다. 간단하게 구원받지 못했다면 귀신 들린 자로 정리해도 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구원의 기준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기준은 낮아지는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을 명심하고 이 사건을 묵상하면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라는 지방에 가셨을 때 만난 귀신 들린 자가 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그는 무덤 사이에 살았고, 쇠사슬도 스스로 끊어버릴 정도의 초인적 괴력을 가졌다. 여기에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스스로 해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 귀신은 물러가고 치유된 사건이다. 예수님께선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말씀하신다.

 

먼저 눈에 띄는 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소리쳤다. 언뜻 예수님을 바로 알고 존대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라는 말이다. 다른 귀신 들린 자와는 다른 태도다.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바로 인식했다는 건 주목할만하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바로 아는데 귀신 들렸다는 건 아주 특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하게 귀신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로 안다고 하거나, 귀신도 알아보는 예수님이라고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그 사실상 모순이다.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지한다는 건 모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려주신 예수님을 알면서 목적을 상실한 귀신 들린 상태가 될 수는 없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인 진정한 의미를 안다면 귀신 들릴 수 없단 의미다. 따라서 이 귀신 들린 자는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상실한 사람의 모습이다.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상투적인 신앙 비판인가? 싶겠지만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귀신 들렸는데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지하는 같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라는 낮고 천한 자리에서 육신 가진 사람에게 인생의 목적을 말씀하셨는데 그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는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높고 귀하고 이기고 성공한 자리로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인 것을 안다고 하는데 정작 귀신 들린 모습의 군대 귀신 들린 자의 모습이다.

 

이처럼 오늘날 신앙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의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낮고 천한 십자가에 보내셔서 의와 뜻을 나타내시고 예수님은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는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높은 곳에 오르려 한다. 반대로 믿고 있는 증거다. 십자가로 보이신 우리 육신의 삶을 지배해야 할 온전한 정신이자 인생의 목적 아닌 다른 게 삶을 지배하고 있으니 귀신 들린 것이다.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세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와 믿음은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지하는 것과 같은 것

 

따라서 세상 가장 실패한 신분인 사형수가 되어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세상에서 이기고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오늘날 신앙인의 모습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지하고 있지만 실상은 귀신 들린 상태다. 이 귀신 들린 자의 일이 오늘날 신앙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이렇듯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