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형식의 방향성으로 보는 생명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4. 8. 24. 13:21 Writer : 김홍덕

<내용과 형식>에는 방향성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항상 내용이 먼저 있고, 그리고 그 내용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을 가진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나고 또한 안에서 밖으로 자란다.


항상 내용이 먼저 있고, 형식이 뒤 따르는 것


다시 말해서 생명체도 유전자와 그 생명의 정체성을 가진 씨나 알과 같은 것이 그 생명의 성체로 표현되는 것이다. 즉 유전자가 가진 독특한 유전정보가 생명의 성체로 표현되는 세계가 바로 생명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밖에서 안으로' 또는 형식만 만들어가는 세계가 있는데 이것은 공산품과 제조물의 세계이다. 이것은 생명과는 전혀 반대적인 개념이다.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낳아지는 세계이고, 물건은 만들어지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아주 중요한 관점이다. 즉,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의>, 또한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생명>이 한 사람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언뜻 보면 "하라"라고 비쳐지는 말씀들이 생명의 본성으로 인하여 누구도 금할 수 없는 행동이고 표현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관점은 매우 안타깝지만 내용과 형식, 그리고 생명이 가지고 있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에서 신앙을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안에서 밖으로, 그리고 생명의 본성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신앙 양식이 아니라,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된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흔히,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라고 한다. 그것은 아주 훌륭한 표현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므로 믿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한다."라고 한다. 정말로 이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건 방향이 거꾸로 된 것이다.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호흡이 기도인 것이다. '호흡이 먼저인가? 아니면 유전자와 같은 호흡하는 생명의 본성이 먼저인가?' 당연히 본성과 정체성이 먼저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 있어야 호흡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라야 호흡인 기도를 하는 것이지, 기도한다고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성도라면 기도에 대해서는 걱정 안해도 된다. 생명은 그냥 호흡하니 말이다. 이것을 교회가 대단한 것 처럼 가르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주장한다는 것은 오히려 성도들이 살아있지 않다고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한 관점이 그렇다. 보통의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인가? 사과는 사과나무이기만 하면 열리는 것이다. 고로 사람의 마음 안에 <성령>이 있다면 9가지 열매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노력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셩령이라는 생명만 있으면 열매처럼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


그것을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은 열매라는 것이 생명 세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명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것을 듣고 '아멘!'한다는 것은 자신도 생명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또 외면한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영과 의를 표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표현된 것을 좇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의와 생명이 무엇인지를 표현된 것을 통하여 알아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서 그 표현된 것을 따라하고, 지켜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명의 방향성에 반대되는 개념이고, 그것은 <낳는 세계>가 아니라 <만드는 세계>의 생각과 삶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반대하는 것이다. 방향이 반대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지켜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표현되는 원 내용을 알아야 성경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은 그저 이루어진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는 것은 쉬운 정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지면 어떤 삶을 사는 것인지에 대한 말씀이므로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정체성만 있다면 성경은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성경을 이루어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의 마음 안에 내용이요 본질이며 생명의 정체성인 그리스도의 본성이 있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 몸부림쳐도 오히려 살면 살수록 성경을 이루어가는 삶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본질이고 내용이다. 그러니 어쩌랴? 그저 그리스도만 제대로 전하면 그만인 것이다. 아니 그것 뿐이다. 신앙이란 것은, 또한 교회가 할 일이라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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