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3:23-29) 믿음이 오기 전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6. 30. 18:05 Writer : 김홍덕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므로 율법의 효력은 절대적으로 범법자에 한정된다. 또한 죄를 고백하고 시인한다는 것 역시 범법자라는 의미다. 바울 사도는 율법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손이 오기까지 있는 것이라고 했다.(3:19) 그리고 이 자손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 역시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라는 본성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까지의 세월은 범법자라는 말이다.

 

이는 구원의 법과 결을 같이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므로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구원받기 전까지 죄인이었기에 죄인임을 고백하므로 구원이 시작된다. 그리고 거듭난 생명의 정체는 바로 그리스도. 그리스도라는 본성으로 다시 나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물과 성령으로 된 거듭남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의 시간은 율법의 시간이자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지 않은 범법자로 산 시간이다.

 

이 시간은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을 알고 교제한다고 했다가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하나님의 세계가 없다는 말이다. 즉 천지창조 이전이라는 말이다. 정리해 본다면 율법의 시간, 율법으로 죄를 깨닫기 전 범법자로서의 시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간이기에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은 천지창조 이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핵심은 우리가 죄를 깨닫는 것이다. 그 시점 이전은 분명히 죄 가운데 있다.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 가운데 있었다는 말이다. 범법자로서 살았다는 말이다. 율법 아래 있었다는 말이다. 죄를 고백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약속 밖에, 그 이후는 약속 안에 속한다. 이로써 율법으로 죄를 깨닫기 전까지는 구원을 받지 못한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 가운데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목적과 목표는 전적으로 우리가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에 있다.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우리의 절대적인 목표다. 특히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시므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다는 것은 창조하신 목적을 아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피조물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 곧 성품과 이미지를 표현하시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한 목적을 안다는 것은 창조주를 아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 약속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자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내 삶의 존재 목적이자 의미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결국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자 우리 존재의 목적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 목적은 예수님께서 아주 상세하고 온전하게 보이셨다.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그 육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보이셨다. 따라서 우리가 믿어야 하는 내용은 십자가의 도 이외에는 없다. 그것 외에 우리를 의롭게 할 것이 없으므로 그것 외에 믿을 것은 없는 것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우리 인생의 목적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이것은 착각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신분인 사형수가 되어 죽임을 당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는 것은 엄연히 착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갈라디아서의 주제 안에서 보면 사람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육신의 평안을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의롭게 여기실 것)이란 믿음으로 성경을 육신으로 지켜내는 공로를 드리려 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육신으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이다. 즉 오늘날의 보편적 기독교 신앙관은 율법의 시간 아래 있는 것이자 범법자의 모습이며 아직 하나님의 세계가 창조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