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3:15-22) 율법의 시간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6. 22. 11:30 Writer : 김홍덕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기까지의 시간이고, 약속하신 자손이 오지 않은 시간은 범법자로서의 시간이다. 이는 대부분 신앙인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대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태초부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곧 하나님의 약속은 있었다. 반면에 사람이 그 약속을 자기 운명으로 순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육신이 나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인생의 운명을 대하기까지 혹은 육신의 수고로 인생의 존재 목적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세월이 걸린다. 이 세월을 성경은 천지창조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밝은 빛이 열리기까지 인생의 모든 경영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세계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 태초다. 이 태초를 진정으로 맞이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이 태초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되는 순간 자신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로 거듭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의 육신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남이라고 하는데, 거듭난다는 것은 이전 것을 버린다는 의미다. 이전과 전혀 다른 생명이 된다는 것은 이전 것은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8-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렇다면, 그렇게 천지가 바뀌는 변화에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이전 것이 무가치하게 되는 사건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전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깨닫고 뉘우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 법이 없으면 죄가 없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그러므로 사람이 육신으로 나서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기까지의 모든 시간은 율법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율법의 시간은 죄와 어두움의 세월이며, 사망 가운데 있는 세월이자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 있는 세월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는 세월이기에 육신이 바라는 육신의 정욕을 좇는 세월의 시간이다. 이 모든 시간 속 사람의 가치와 행위와 노력하는 의지와 그 성취에 대한 가치를 일거에 무너트리는 것이 바로 율법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의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인 사람의 노력과 가치는 근원적으로 허상임을 증명하는 증명서와 같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이 죄악임을 강제로 깨닫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지난 삶이 죄악임을 깨달았을 때, 지난 삶이 약속 안에 있지 않음을 범법으로 하나님께서 규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한다. 그러니까 율법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정의를 내려 본다면 율법은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기 전의 삶이 죄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기준으로서의 법이다.

 

그러므로 결국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뜻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영하심의 일환이다. 모든 것은 약속,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기준을 두고서 봐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 것은 바로 그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이 범법자임을 규정하신 하나님의 법이 율법이다. 따라서 이 율법은 별도로 주신 것이라기보다 약속을 주실 때 이미 정의된 것이다. 합격자를 정할 때 불합격자도 동시에 정해지는 것과 같다.

 

다만 목적이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는 것이므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든 세월은 약속 밖에 있는 범법자로서 사는 세월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전의 세월이다. 그 시간이 바로 율법의 시간이다. 이것은 시간을 기준으로 명명하였을 때 율법의 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천지창조의 시간이고 사람에게 주어진 구원의 때다. 그래서 율법은 몽학선생, 곧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고도 한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를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아 하였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