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의로워지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전하면서 자신이 아주 율법적인 사람, 곧 행위로 의로워진다는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열심이었음도 밝힌다.(1:31-14) 하지만 자신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음을 말하면서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이 모태 속에 있을 때부터 그리스도의 계시로 택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대교 안에서의 열심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바울 사도가 사울이었던 시절의 열심보다 더 열심인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생각을 하려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율법적이고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있어야 한다. 성경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도 율법적이며 행위로 의로워지는 삶이라는 것을 이미 설명한 바가 있다. 육신의 평안이나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얻기 위하여 성경대로 살려는 모든 신앙이 바로 바울 사도의 사울 시절의 신앙이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어서 육신이 바라는 바를 얻고자 한다면 최소한 바울 사도의 사울 시절보다는 열심히 있어야 일말의 기대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안타깝게도 바울 사도는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사도가 되는 것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일갈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의 방향성이 틀렸다는 말이다. 이는 바지를 반대로 입은 것과 같아서 완전히 새로 시작하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이 육신으로 성경을 지켜서 의로워지려는 신앙에 지극히 열심이었던 바울 사도가 의로워지는 것은 그 길이 아니라고 일갈하면서 진정으로 의로워지는 법을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시란 사람의 노력이나 기여로 인하지 않은 것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의로워지는 것이 사람의 능동적 노력으로 될 것이 아니라는 말씀과 궤를 같이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정한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삶이 된 존재가 그리스도다. 창조주가 정한 목적이자 계획인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가 그리스도다. 그 첫 열매이자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의 본질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그 몸이 십자가에서 깨어지시니 드러난 인생의 본질이자 삶의 목적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계시다. 하나님이 사람에 대하여 또 창조의 목적과 삶이 된 사람을 일컫는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정의하셨고 그것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이것은 육신 가진 모든 인생에 대한 구원의 섭리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다. 사람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그 계시가 자신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을 순종하고 믿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 모습이 자기 존재의 목적이며 십자가를 지신 이유와 과정이 우리 삶의 이유고 모습인 것을 순종하고 그것을 좇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게 믿음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는 것에 있어 사람이 할 것은 없다. 즉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 같은 이치로 그 구원을 전하는 사도 역시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이다. 바울 사도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육신 가진 모든 인생이 하나님 앞에 구원 받고 의로워지며 그 뜻을 좇아 살아가는 유일한 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유심히 바울 사도의 서신들을 묵상하면 자신의 삶과 사역 그 모든 것은 자신의 행위나 공로가 아님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전하는 내용 자체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아 구원을 얻는 것이나 그 구원을 전하는 모든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것이기에 그 생명이 가진 본성이 있다. 그 본성대로 사는 모습이 바로 행함 있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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