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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2 은혜와 평강(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골로새서 Date : 2013. 1. 17. 14:07 Writer : 김홍덕

1.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인가?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하기를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2)”

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은혜는 Caris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평강은 Eiren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카리스(Caris)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카리스마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단어는 “절대적인 역량이 나타난다. 라는 의미가 짙다. 즉, 신적인 역량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에이레네(Eirene)라는 말은 단순히 평화(peace)로 치환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합의”라는 의미에 가까운데, 즉 ‘서로 합의한 상태’ 혹은 ‘서로 동일한 상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실 필자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라 그 단어의 뜻을 풀어내는 것이 전문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뜻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성경이 기록되던 시절의 단어들은 지금과 같이 단 몇 가지의 뜻으로 뜻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문맥의 정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되던 시절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대체적인 의미를 기반으로 하여 전후에 어떤 것을 이어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의미를 언급해 보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 신실한 형제들에게 문안함에 있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은혜라는 것은 ‘값이 주는 선물’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신적인 역량이 나타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울은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라고 하고 있는데, 은혜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은혜는 신적인 역량이 나타나는 것이기에,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라는 것이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됨과 같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신적인 역량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사실 신적인 역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언뜻 기적을 말하곤 한다. 큰 교회의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기적은 한마디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과 육신의 문제에 대한 불가사의한 해결이나 변화를 기적이라 여긴다. 


그러한 관점으로 드리는 예배는 육신의 축복(Have와 Do에 관한 축복)을 기원하는 것에 매몰되기 쉬운데 그런 모습이 큰 교회들의 신앙 정체성과 목적이 되어 가는 것 같은 시대적 상황은 기쁜 일이 아니다. 


기적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골로새서 포스트의 처음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기적은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은혜, 곧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이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사람이 이전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전혀 다른 삶의 모습(보이는 모양을 한정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 진정한 기적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금전적인 문제와 같은 문제들이 뜻하지 않고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방법이나 현상으로 해결되는 것을 기적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으키시는 기적, 곧 은혜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는 바울 사도 역시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뜻은 세상적인 권세를 얻게 되거나, 영생불멸의 몸이 되었거나 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지 않고,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 곧 신적인 역량이 자신에게 나타난 기적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또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에게 임하기를 문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람이 변하는 기적 그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다 사도가 된 것은 단순한 신분과 행위의 변화가 아니라, 생명과 안목이 바뀐 것이다.


알고 보면 바울 사도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했었던 사람이었다. 그때 그는 모든 율법을 행위로 지키려고 한 유대교인이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율법이 정한 규례와 법을 행함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신앙관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장 9-10절에서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라고 율법 안에서의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 사울이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은 행위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의로움은 율법을 행함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 내적 변화가 바로 기적이고, 은혜이며, 하나님의 신적인 역량이 자기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3장 28절에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은혜는 사람의 마음에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행함과 소유로 의로워지거나, 세상적 경쟁력이 높아질수록 기뻐하시는 신을 믿는 세계에 살다가, 그런 것에 의가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어떤 행함이나 조건도 없이 의롭고 인정받는 하나님의 법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