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7:21-23)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기에게 불리할 수 있는 말씀들을 묵상하는 데 인색할지 모릅니다. 바로 오늘 본문 같은 말씀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부른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 이 말씀은 단순히 경각심을 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핵심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은 이미 하나님과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걸 전제로 하는 호칭이 포함된 말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아들이라는 의미가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건 줄탁동시(알 속의 병아리와 밖의 어미가 같이 껍질을 쪼는 것)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아들이어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그럴 수 있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중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냥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아버지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걸 이해 못하기 때문에 ‘어머니 하나님’같은 괴랄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걸 이단이라고 비난하는 소위 말하는 정통 교단에 속한 사람들도 사실은 어떻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 고작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로 삼으셨다”는 게 전부입니다. 왜 아들로 삼으시는지, 아들로 삼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거의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들의 아버지의 의와 뜻이 육신이 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건 그 자체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걸 성경적 표현으로 “말씀이 육신이 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와 뜻)이 내 육신(삶과 행동)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니 이런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예수님 말씀의 요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건 내 생명과 삶의 본성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본성)이 된 사람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상의 선택들 중에 어떤 것이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데, 하나님의 아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자기 육신의 본성과 생명이 된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뜻이 인생으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살면서 고민하는 건 하나님의 뜻과 뜻이 아닌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이 더 아들다운 모습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진학이나 취업 그리고 결혼과 같은 중대한 인생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이미 그런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자기 본성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네가 밟는 땅이 모두 너희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불기둥이나 구름 기둥 같은 신호가 없어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상태가 되는 게 약속하신 땅(사람)에 들어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기만 하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되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 삶을 이끄는 본성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주관하므로 하나님을 주로 부르고, 몸소 십자가를 지시며 이 법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주로 부르는 게 그 삶과 본성 속에 있지만, 자기 안에 이 본성이 없어서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느라 하나님을, 예수님을 “주여!”라고 간절히 부르기만 하는 사람과는 차원과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심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를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삼으시므로 우리를 아들로 삼으셨다는 교리적인 말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간주합니다. 7,80년대에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성문 영문법과 수학의 정석을 알고 웬만하며 그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책이 의도한 대로 영어와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책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명제와 교리는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도 알지만, 그게 나의 본성이 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쉽게 자신을 하나님 아들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결정적인 증가가 있는데 바로 죄와 회개입니다.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지만, 누군가가 “그럼 넌 죄가 없느냐?”라고 묻기라도 하면 머뭇거리거나 신학적 변명 밖에 없는 상태라면, 그래서 기도할 때 마다 회개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죄가 있어서 되겠습니까? 물론 이것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상태가 죄인의 상태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존재가 되는 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와 구원의 개념이라는 게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이어야 대응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세례문답에서 “예”라고 대답한 게 구원인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주님이 모르신다고 한 “주여”라고 부르는 사람

 

그러므로 교리문답에서 “예”라고 대답한 것으로는 절대 천국에 못 갑니다. "그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 줄 알며, 진노를 면치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까?"라는 교리문답에 “예라고 답하는 게 구원이라고 믿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 뜻대로 살 수밖에 없는 생명과 본성을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아직 몰라 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지 반드시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 같은 거 모르고, 상관도 없다는 사람보다, 구원이 없는데 받은 줄로 착각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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