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3)

다윗의 신앙 고백은 대부분 시편에 담겨 있지만, 특이하게도 역사서인 사무엘 하 23장에서 유언과 같은 그의 마지막 말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짧은 이 마지막 말에서 다윗은 자신을 평가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린 자라고 인치셨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 집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기에 모든 구원과 소원을 이루게 하셨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자화자찬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기에 누구도 다윗의 고백을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던 자기 삶을 하나님께서 인치시고 모든 소원을 이루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윗은 역경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원이나 소원 성취의 기준과 다윗의 견해는 다소 달라 보인다.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는 구원은 다윗의 삶과 거리가 멀다. 질투에 눈이 먼 사울을 피해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도망 다닌 것은 물론이고, 평생을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터에서 보냈다. 게다가 어쩌다 궁정에서 쉬는 날 간음이라는 죄를 범하고, 그 일로 인해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고 자식들이 서로를 범하고 죽이는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상상하기 힘든 삶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삶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이자 소원을 이루어 주신 삶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 준다. 사람들은 왕이라는 직분이나 그가 누린 부귀영화라는 단편적인 부분만 선택적으로 보고 다윗의 삶을 성공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다윗의 삶은 전쟁과 고난으로 점철되었는데, 그는 그런 자기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삶의 형태가 험악했음에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고백은, 육신의 삶의 모양이나 결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가늠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이 자기 삶을 자화자찬하듯 평가한 그 기준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전쟁과 고난과 환난으로 점철되고 심지어 치명적인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공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고 평가하시는 다윗의 가치관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거나 간음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다윗은 자기 삶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시는 생명의 본성을 삶의 가치로 보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듯이, 우리 역시 우리 삶의 형편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을 푯대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삶의 형편이 형통한 것이 은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로운지가 은혜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삶이 곤고하고 내리막길을 걸으며 심지어 육신의 삶이 손발을 더럽히듯 죄를 범하는 모양새라 하더라도, 내 중심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양심적인 확신이 있다면 그것이 신앙과 은혜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는 것이고 다윗이 자신을 평가한 기준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신앙을 가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교회에서는 늘 공부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간다는 식의 이야기만 반복하곤 한다. 핵심은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선진들과 같은 믿음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그들을 본받으라고만 외치면 성도들은 노력하다 실패하고 지쳐서 돌아올 뿐이다. 다윗과 같은 신앙을 향한 과제에서 본질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기에 그저 신념만 가지고 쳇바퀴 돌듯 노력만 반복하게 된다.

 

선진들의 신앙을 본받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 뿐

 

결국 핵심은 거듭남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공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인치셨다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교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듭나서 얻은 생명의 본성이 하나님의 공의로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명이기에, 그것을 외면하거나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의 진정한 본질이다.

 

우리는 모두 다윗처럼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공의가 다스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생명이 바뀌는 것이고, 생명이 바뀌었다면 본성 또한 바뀔 수밖에 없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의 본성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로 살아가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삶의 형편이 어떤 굴곡을 겪더라도 자기 중심이 그러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므로, 결국 그것을 인생의 유언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신앙이고 구원이며 거듭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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