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나 세상의 마지막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종말론적인 느낌을 줍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절망적인 것이고, 그 앞에서 무언가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을 우리는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마지막’은 우리에게 늘 가까이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어떤 것이 그 존재의 목적을 다 할 때, 혹은 기대를 다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마지막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은 단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크로노스적인 시간, 객관적이고 표준화 된 시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카이로스적인 시간, 주관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12시가 점심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크로노스적인 시간 개념이라면, 배고플 때가 밥 먹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카이로스적인 시간 개념입니다. 마지막도 서기 2500년 어느 때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존재 목적이 상실된 때입니다.


성경이 시간적인 개념을 표준시와 같이 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첫째 날을 만드시고 그때를 ‘서기 원년이라 하시니라.’와 같은 제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하나 사건 때 마다 ‘때는 00년’이라고 언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때가 몇 년인지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의인 5명이 없다는 것이 멸망의 때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만물에게는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고, 그 목적이 소진되는 것이 바로 그 존재의 마지막인 것입니다. 휴지의 마지막은 오물을 닦아 내었을 때고, 그릇의 마지막은 담은 것이 새거나 간직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바로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먼저 존재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있기에 그것이 소진되는 마지막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마지막은 어디까지나 목적의 존재 유무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지막도 달력의 시간으로 어떤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다 수행한 그 때가 마지막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달려갈 길은 다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죽었다는 것은 그 목적 안에도 들지 못한 쓰레기와 같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생들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모든 것에 존재의 목적이 있음을 알뿐 아니라 그 목적을 인하여 만들고 사용하고, 그 목적 다하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자신들이 왜 존재하는지는 생각지 않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니 죽은 것이요, 그런 자들에게 마지막은 그저 달력의 어느 날이란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없으니.


베드로 사도가 쓴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성도>들입니다. 성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신 목적을 알고 그것이 자기 삶과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에게 마지막 때를 이야기하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고, 아직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며, 인생은 일회용이므로 그렇게 사랑하며 사는 세월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세월을 아끼라는 것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랑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면 늘 이야기하듯, 사랑은 결국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관계입니다. 세상의 반이 남자고 또 다른 반이 여자인데 그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다는 것은 자신의 연인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이성이라는 뜻인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유일한 내용이요, 의(義)요, 목적이 되시고, 인생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의를 나타낼 유일한 형식이 되는 관계요, 서로에게 그런 의미가 되는 유일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지막이 가까우니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인생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형식과 육신 가진 인생이란 것을 알고 그것을 나타내고 표현하며 사는 것에 충실 하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달성될 때,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계획하시고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분량의 삶이 마지막이 되고 다할 때까지 서로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라는 권면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신 목적을 알게 하고, 그것을 즐기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십자가를 지듯 섬기고, 자기 육신으로 서로에게 하나님의 의를 풍성하게 표현하면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하신 것도 그것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각자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육신을 소비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어 서로에게 상대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에서 의미 있는 인생임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도록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으로서 존재하는 목적과 삶의 의미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그것을 보는 서로에게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죄를 사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인생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아래 있다면 그것은 아직은 마지막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그렇게 목적대로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마지막을 행해 간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알고, 인생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 안에서 그 육신을 소비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 수고를 보는 이들이 다시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인생을 소비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때가 두려운 때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소비하여야 하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인생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은 마지막 때로 가면 갈수록 즐거운 것이나, 인생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하고 허비한 인생들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1. chlgurwn33 2018.07.29 13:32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나는 루가 18장 1-8절 ‘과부와 재판관’ 편 8절「“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에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하는 이 반의 구절 밖에는 별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이탈리아어 제22판을 내면서’ 편 11페이지 10-11째줄『“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루가 18장 8절)』내용을 읽어보고 “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때”인지 “올 때”인지 성서 구절을 대조해 보아서 그런지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하는 이 나머지 반의 구절이 떠오르면서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즉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하느님께서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언적인 차원으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루가 18장 6-8절 “이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으냐?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를 살펴보니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고 하였고 “그들에게”라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면서 곱비신부님의 영적지도자 신부님께서 ‘이탈리아어 제22판을 내면서’ 편 11페이지 7째줄 부터 12페이지 1째줄 까지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선종하기 일년 전인 1977년에 토로한, 장 기통(프랑스의 현대 가톨릭 철학자)이 쓴 책「바오로 6세의 미공개 어록(語錄)」
    【『세상과 교회에 현재 하나의 큰 걱정거리가 있다. 문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본인은 예수께서 루가 복음에서 하신 우울한 말씀을 새삼 혼잣말로 되뇌곤 한다. : “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루가 18장 8절) 몇몇 주요한 진리에 관한 신앙 감퇴를 역력히 보이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데도 주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그러니 이런 책들을 수상쩍게 여기지도 않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본인이 보기에는 이야말로 수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따금, ‘마지막 때’에 관한 복음을 읽으면서 바로 이 시대에 그 종말적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연 종말이 가까워진 걸까? 이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루가 24장 36절, 마르 13장 32절 참조) 우리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아직은 오래도록 계속될지도 모른다. 좌우간 가톨릭세계를 바라볼 때 본인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가톨릭교회 내부에 가톨릭적이 아닌 사상이 종종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보이는데다, 이 비(非)가톨릭적 생각이 장차 더없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교회’의 생각을 그런 것이 대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작은 양떼가 남아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양떼라 하더라도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바오로 6세)』】
    부분이 떠오르면서 이 재판의 판결은 한 두 사람의 억울함을 가리는 판결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라고 하였고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으냐?” 하였으니까 즉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 것을 뜻한 어떤 단체적인 억울함의 부르짖음에 대한 판결을 하느님께서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지체 없이 올바르게 판결을 해주신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재판을 말하는 즉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이러한 일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하느님께서 진실 되게 이루실 말씀으로써 즉 이러한 일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루어질 일이라고 성서에까지 기록된 일이라면 시대적으로 아주 분명하며 중대한 일일 것이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불분명한 재판의 판결의 비유가 결코 아닐 것이며,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미공개 어록(語錄)에서『아무리 작은 양떼라 하더라도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또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420번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편
    【「1. ‘복음서’에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가 18장 8절) 하는 말씀이 있다. 2. 오늘 너희는 내 성자께서 하신 그 말씀을 묵상하기 바란다. 중대한 말씀이다.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하심으로써 너희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우선,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그것은 그분께서 당신 재림을 너희에게 준비시키시기 위해, 그 영광스러운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징이 될 상황을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3. 그 상황이란 (바로) 믿음의 상실이다. 4. 성서의 다른 대목, 곧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성 바오로의 편지(2데살 2장 3-8절 참조)에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앞서 엄청난 배교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분명히 예고되어 있다. 배교는 바로 믿음의 상실이다. 따라서 배교의 확산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표징인 것이다. 5. - 나는 파티마에서 참 신앙 상실의 시대가 오리라고 예언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성서에 예언되어 있듯이 참 신앙을 잃은 내 아들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이 고통스럽고 심각한 상황이 너희 시대의 특색인 것이다. 6. 신앙 상실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오류의 만연이다. 오류가 널리 전파되고 있고, 흔히 신학교와 가톨릭 학교의 신학교수들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오류가 진정하고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둘째, 교회 및 특히 교황의 그르침 없는 ‘교도권’에 대한,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반역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의 진리 안에 온 교회를 보전할 임무를 교황에게 맡기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셋째, 세속 정신에 온통 사로잡힌 목자들이 보이는 악한 표양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선전원이 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장 15절)고 하시며 주신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 7. 그리하여 너희의 이 시대에는 허다한 내 가엾은 자녀들이 점점 더 배교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8.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9. 그분의 재림이 다가올수록 나의 모성적 활동은 그만큼 더 큰 심려와 함께 활발해진다. 내 모든 자녀들을 도와, 신앙의 진리 안에 항구히 머물도록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더러 내 티없는 성심에 봉헌하라고 (당부)하면서 이 너희 시대에 나의 ‘마리아 사제운동’을 도처에 전파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니, 기도의 ‘다락방’ 에 모여 깨어 기다리는 작은 양떼(2백주년성서 루가 12장 32절)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이는 참 신앙을 항상 보존하게 하려고 내가 모아 양육하는 양떼이다. 10.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실 때에, 내게 봉헌하여 티없는 내 성심의 천상 정원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분은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믿음을 만나게 되실 것이다.」】
    에서 특히 1. 2. 3.【「1. ‘복음서’에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가 18장 8절) 하는 말씀이 있다. 2. 오늘 너희는 내 성자께서 하신 그 말씀을 묵상하기 바란다. 중대한 말씀이다.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하심으로써 너희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우선,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그것은 그분께서 당신 재림을 너희에게 준비시키시기 위해, 그 영광스러운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징이 될 상황을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3. 그 상황이란 (바로) 믿음의 상실이다.」】에서「오늘 너희는 성자께서 하신 그 말씀을 묵상하기 바란다. 중대한 말씀이다.」하시면서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징이 될 상황을「그 상황이란 (바로) 믿음의 상실이다.」하고 그리고 6.【「6. 신앙 상실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오류의 만연이다. 오류가 널리 전파되고 있고, 흔히 신학교와 가톨릭 학교의 신학교수들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오류가 진정하고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둘째, 교회 및 특히 교황의 그르침 없는 ‘교도권’에 대한,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반역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의 진리 안에 온 교회를 보전할 임무를 교황에게 맡기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셋째, 세속 정신에 온통 사로잡힌 목자들이 보이는 악한 표양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선전원이 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장 15절)고 하시며 주신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에서 신앙 상실의 원인을 첫째, 둘째, 셋째를 계속 설명해 주셨듯이 즉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미공개 어록(語錄)에서『아무리 작은 양떼라 하더라도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즉 작은 양떼란 여러 가지 뜻을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또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 것을 뜻한 어떤 단체적인 억울함의 부르짖음에 대한 판결을 하느님께서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지체 없이 올바르게 판결을 해주신다는 뜻도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말씀으로써 즉 판결의 척도로 볼 수 있는 루가 17장 20-37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 34절에서 “잘 들어 두어라.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누워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하셨듯이 두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 천년왕국을 세우시는데 도구로 쓰일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에서처럼 여러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서 데려가는 사람들이나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에서 두 예언자가 죽어서 살려서 데려가는 사람들이나 즉 살아서든 죽어서든 모두가 묵시록의 천년왕국을 튼튼히 세우시려고 데려가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루가 18장 1-8절 ‘과부와 재판관’ 편은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루어질 일로써 또 이때 묵시 6장 9-11절, 7장 9-11절, 20장 4-6절 순교자들의 영혼이 살아나서 휴거한다는 같은 말씀으로써 즉「오늘 너희는 내 성자께서 하신 그 말씀을 묵상하기 바란다. 중대한 말씀이다.」하셨듯이 즉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즉 묵시 12장 1-18절 ‘여자와 용’ 편 5절에서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분이었습니다.’ 하였듯이 이 재림시대에도 성모성심을 통하여 예수님을 우리에게 낳아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듯 곱비신부님 메시지 책에서 두 번째 성탄과 두 번째 성령강림을 수 없이 말씀하셨듯이 즉 바로 그 날 루가 17장 20-37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에서 살아서 데려가는 사람들이나,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에서 두 예언자가 죽어서 살려서 데려가는 사람들이나 즉 살아서든 죽어서든 모두가 묵시록의 천년왕국을 튼튼히 세우시려고 데려가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소돔【가톨릭 성서낱말사전 ‘소돔’ : 하느님께 대한 죄악으로 고모라와 함께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도시. 사해 동남쪽 바다에 잠겨 있다 함.】같은 벌은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 7, 12, 13절에서「7절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그 짐승이 올라와서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12절 그리고 그 두 예언자는 자기들을 향해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예언자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13절 바로 그 때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그 지진 때문에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하였듯이 내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이 바로 루가 18장 1-8절 ‘과부와 재판관’ 편의 말씀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시대라는 생각입니다.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62번 ‘하느님께서 주시는 표징’ 편 1. 사랑하는 아들들아, 마음이 뒤숭숭해지지 않도록 하여라. 어째서 의심하느냐? 어째서 내가 예고한 표징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현재와 미래를 확신없이 쳐다 보고 있느냐? 2. 하느님께서 이 시대의 세상과 교회에 주시는 유일한 표징은 ‘나 자신’일 뿐이다. 3. 오직 나만이 하늘에 나타날 큰 표징으로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 태양을 입고 있는 여인. 달을 밟고, 열두 개의 별로 찬란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여인이다(묵시 12장 1절 참조). 4. 또 붉은 ‘용’(묵시 12장 3절), 곧 무신론에 대한 나의 승리도 예언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의기양양하게 이기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티없는 내 성심이 세상에 개선할 것이고, 이는 내 운동의 사제들을 통해 거둘 승리가 될 것이다. 5. 이것만이 유일한 조짐일테니 이제 하늘에서 다른 징조를 찾지 말아라! (…)), (63번 ‘어린이들에게 드러날 하느님 나라의 신비’ 편 5. 네게 이미 말했지만 한 번 더 말한다 : 어떤 외적 방해도 나의 이 사업을 해칠 수 없다. 이 사업은 오늘날의 교회에 주는 나의 징표이다. 6. 교회가 가장 혼란스러울 때, 내 많은 자녀들의 믿음을 뒤엎을 큰 사건들이 발발하기 직전에, 너희에게 줄 나의 징표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7. ‘교회의 어머니’인 내가 직접 개입하여 이 구원사업을 시작하고 있고, 그것도 단순하게, 은밀히 하고 있다. 아주 겸손하게 숨어서 일하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다. 하지만, 아들아, 그렇게 하는 것이 언제나 이 엄마의 행동방식이었다. 8. 그런즉 너희가 내 활동을 알아보려면, 어린이의 눈, 어린이의 정신,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단순, 겸손, 묵상, 가난, 순결을 회복해야 한다.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참으로 ‘그런 어린이들’(마태 11장 25절 참조)에게 드러날 것이다. 9. 그렇게 하면 너희 영혼의 내적 하늘이 환하게 빛나리라. 내가 손수 내 모습을 새겨주리니 너희 마음이 정녕 변화될 것이다. 10. 너희 마음이 나의 나라가 되고, 내 운동의 사제들인 너희를 통해 오늘날의 교회에 갈수록 더 명확해질 나의 징표를 주겠다. 모든 이가 알아보게 될 그것은 바로 내 현존과 도움의 징표, 티없는 내 성심이 승리하기로 되어 있는 내 활동의 징표일 것이다.),】(83번 5-6.), (166번 ‘그분의 재림’ 편), (168번 ‘정화의 첫째 표징 : 혼란’ 편), (169번 ‘둘째 표징 : 무(無)규율’ 편), (170번 ‘셋째 표징 : 분열’ 편), (171번 ‘넷째 표징 : 박해’ 편),【(175번 ‘태양을 입은 여인’ 편 1.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유는, 적대적인 두 지휘자, 즉 태양을 입은 ‘여인’인 나와 붉은 ‘용’의 명령대로 만민이 전열을 짜서 참전하게 될 전투에 있어서, 나의 계획을 너희에게 밝히려는 것이었다.), (191번 ‘승리의 어머니’ 편 13. 폭풍이 가장 맹렬하질 때, 너희는 나의 큰 빛이 더욱 빛나면서 더욱 명확해지는 것을 보리라,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쓴 ‘여인’(묵시 12장 1절) 말이다! 14. 이것이 나의 승리와 너희 승리의 표징이다.), (206번 ‘영광을 입은 나의 몸’ 편 3. 나는 태양을 입은 ‘여인’이다. 너희에게 있어서 영광을 입은 나의 몸은 내 완전한 승리의 표징이다. 은총과 사랑의 영원한 태양이 이제 (그 광선으로) 내 성자 예수님의 영광과 깊이 결합되어 있는 이 영광스러운 몸을 비추고 꿰뚫으며 휩싸고 있다. 4. 나의 빛은 내 성심의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이 빛으로 암흑에 뒤덮인 세상을 감싸며 비추어 주고 싶다. 티없이 순수한 이 빛의 궤적(軌跡)을 따라 달려와 다오! 영광스럽게 (변모)된 내 몸의, 형언할 수 없도록 현묘한 향기에 너희 자신을 맡기려 무나!),】(314번 1-2.), (342번 9.), (365번 1-8.), (366번 2, 6-7.), (383번 1-5.), (384번 2, 9.), (385번 7, 10.), (387번 14.), (389번 6-7.), (404번 4, 9.), (407번 1, 18.), (415번 14-16.), (417번 7-9.), (420번 4, 9.), (449번 6.), (458번 1-4.), (473번 1-3.), (480번 1-2.), (485번 1-30.), (521번 7-15.), (558번 9.),【(580번 ‘작은 양떼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편 6. - 작은 양떼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 천상 엄마가 승리의 군대 안에 곳곳의 너희를 모아들이는 은혜를 베풀었으니 말이다. 결전의 때가 왔다. 사탄은 이미 권세의 절정에 이르렀고,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바를 이룰 터인데, 그것은 교회의 더없이 고통스러운 정화를 위한 것이다. 7. 너희가 곧 살게 될 시기는 가장 중요한 시기 중에 드는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예고한 사건들이 (그 동안) 다 일어날 것이다.)】(581번 2-7.), (603번 9-11.), (604번 12, 15-18, 22-23.)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재림」: 구약성경 총0절 + 신약성경 총21절 = 구, 신약 총21절 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표징」: 구약성경 총93절 + 신약성경 총72절 = 구, 신약 총165절【큰 표징 1 + 4 = 5, 징조 6 + 2 = 8】참조.
    ※ 영성시집 ‘171. 그분의 재림’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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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hlgurwn33 2018.07.29 13:34

    107. 천년왕국
    가톨릭 대사전에서 ‘재림’ ‘천년왕국설’ ‘공심판’ 등을 찾아보고 ‘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109 󰃅 공심판은 무엇이뇨? 󰂼 공심판은 육신이 부활하면 곧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천사들과 모든 사람 앞에서 각 사람의 사심판(私審判)의 판결을 공포하시는 것이니라. 의 해설을 연구해 보았는데 ‘상해천주교요리’를 읽어 오면서 다른 부분에서는 의심을 느껴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유독 109 󰃅󰂼 공심판 해설 ‘천년왕국’ 부분에서는 생각할 수록 의혹만 더 늘어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109 󰃅󰂼 해설 344페이지 14째줄에 보면「천년왕국설은 아직 열교로 단죄되지는 않았지만」하고 기록된 점이였고 또 가톨릭 대사전 ‘천년왕국설’에 보면「유스티노, 이레네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지지를 받기도 했던 이 설은 교회에 의해서 배척되었다.」란 즉 단죄되지는 않고 배척만 되었다는 내용인지 믿음에 아직 결정적 판단이 서지는 않았는데 마태 24장 3-44절「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들 과는 다르게 마태 25장 31-46절「최후의 심판」편은 내용의 성격이 서로 다름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천년왕국설을 과거에 여러 열교의 교파들이 일관성 없게 부분적으로 주장했던 그런 설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묵시록의 천년왕국을 깨닫고 믿는 쪽으로 설명해가고 있는 것인데 마태 24장 3-44절「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은 마태 25장 31-46절「최후의 심판」편과는 상당한 기간이 예측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은「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은「최후의 심판」편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말이지만 즉 예수께서는 당신이 천년왕국때 재림하실 것과 세상종말때 재림하실 것을 함축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면서 또한 잘 살펴보면 구분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때의 재림이 종말때의 재림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것이며 종말때의 재림이 천년왕국때의 재림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요한 14장 24-26절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거니와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 하셨는데 물론 이 말씀은 성자의 시대인 그 시대에도 이루어진 말씀이지만 성령의 시대인 이 재림시대에도 이루어질 말씀으로써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 주실뿐만 아니라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때인 것인데 마태 24장 25-28절의 내용을 보면 “이것은 내가 미리 말해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광야에 나타났다’ 해도 나가지 말고 ‘그리스도가 골방에 있다’ 해도 믿지 말아라.” 하셨는데 이 뜻은 마태 26장 29절 “잘 들어 두어라.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하신 말씀의 즉 미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뜻으로써 묵시 1장 7절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 가슴을 칠 것입니다. /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처럼 하늘에 나타나는 순간적인 그 날과 그 시간의 기적적인 재림이나 예수님 시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오시는 우리안에 또는 어떤 사람안에 협조자 성령으로 재림하시는 재림을 뜻하는 것이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고 과거처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그런 재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마태 24장 29-31절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을 것이다.” 하셨는데 이 말씀은 묵시 1장 7절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 가슴을 칠 것입니다. /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과 또 즈가리야 12장 9-11절 ‘그 날이 오면, 내가 몸소 나서서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뭇 민족을 멸하리라. 내가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에게 용서를 빌 마음을 품게 하리니 그들은 내 가슴을 찔러 아프게 한 일을 외아들이나 맏아들이라도 잃은 듯이 슬퍼하며 곡하리라. 그 날이 오면, 므기또 골짜기 하닷림몬에서처럼 예루살렘에 곡성이 터질 것이다.’ 하신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즈가리야 12장에서 14장까지를 보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하고 예수님께서 오실 날을 14번씩이나 말했듯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즈가리야서에서 말하는 그 날은 와버렸는데 또다시 이번에는 당신께서 직접 요한 14장 20절에서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요한 16장 23절에서 “그 날이 오면 너희가 나에게 물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또 마태 24장 36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또 마태 25장 10-13절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겨졌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고 “그 날이 오면” “그 날과 그 시간”이라는 말씀을 다시 여러번 말씀하셨듯이 우리로 하여금 묵시 1장 7절처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결정적인 그 날과 그 시간이 와서 그 일이 일어날 때 믿게 하시려는 말씀이신 것인데 마태 24장 29-30절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셨는데 즉 이것이 바로 재림이고 묵시 1장 7절과 즈가리야 12장 9-11절이 예수님시대와 흡사하게 다시 실현되는 때가 아니겠습니까?
    마태 24장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하신 이 말씀은 종말때도 그렇겠지만 종말때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종말 이전의 천년왕국 재림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마태 24장 37-39절 “노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바로 그럴 것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홍수를 만나 모두 휩쓸려 갔다. 그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홍수를 만났는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하시면서 상기를 고조시키시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홍수가 난다는 말씀이 아니라 마태 24장 40-41절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는 말씀이신 것인데 그리고 이 말씀은 마태 25장 10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겨졌다.”하신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즉 살아서 데려가신다는 특별한 내용과
    묵시 11장 7-12절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그 짐승이 올라 와서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며 상징적으로는 소돔【가톨릭 성서낱말사전 ‘소돔’ : 하느님께 대한 죄악으로 고모라와 함께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도시. 사해 동남쪽 바다에 잠겨 있다 함.】이라고도 하고 에집트라고도 합니다.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시체를 구경할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교환할 것입니다. 이 두 예언자는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괴로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사흘 반이 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셔서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그 두 예언자는 자기들을 향해서 “이리로 올라 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예언자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갔습니다.’ 즉 죽고 사흘 반이 지나서 살려서 데려가는 내용과 즉 살아서 데려가는 내용과 죽어서 살려서 데려가는 내용이 다르면서도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즉 ‘그 도성은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며’ 하였듯이 즉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은 예루살렘 이듯이 죽어서 살려서 데려가는 두 예언자와 살아서 데려 갈 사람도 예루살렘인 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일로써 즉 공심판 때 깨어있으면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말도 되지만 즉 천년왕국을 튼튼히 세우시려고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은 깨어있다고 굳이 살아서 데려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즉 하느님께서 모세의 시종인 별로 특별한 신분도 아닌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택하셨듯이 또 엘리야의 제자로 엘리사를 택하셨듯이 물론 누구든지 깨어있는 사람을 전제로 하시겠지만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 중에서 누구든지를 택하셔서 천년왕국을 튼튼히 세우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듯이 결국에는 이미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예수께서 천년왕국 재림 때 준비하고 깨어있는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고 즉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기적이 끝나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지나서는 문이 잠겨지는 이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 마태 24장 15-18절을 보면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대로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독자는 알아 들으라.)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러 내려오지 말며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 가지 말아라.” 하셨듯이 지금은 시대적으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렇다면 이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다니엘 12장 11절 ‘정기제사가 폐지되고 파괴자의 우상이 선 다음 일천 이백 구십 일이 지나야 끝이 온다.’ 하였듯이 마카베오상 1장 45절 ‘안식일과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47절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54절 ‘안티오쿠스왕은 번제 제단 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을 세웠다.’ 하였듯이 이런 일을 비유로 이 시대에 맞게 영신적으로 알아 들어야 할 것인데 세간에 대한 과도한 애착, 겉옷에 대한 과도한 애착, 돈, 명예, 권력, 쾌락, 낙태 등 정신적으로 거룩한 곳에 우상이 서면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가 버리고(에제키엘 8장 4-6절. 또 에제키엘 10장, 11장, 43장, 44장 참조) 그러면 재앙이 내리는 것인데 그래서 우상은 흉측한 황폐의 상징인 것인데
    마태 24장 15-20절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독자는 알아 들으라.)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겨울이나 안식일에 피난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여라.” 하셨듯이 즉 산으로 피난 간다는 것은 전쟁의 상황을 말하는 것인데 전쟁이 일어나면 그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산으로 피난을 갔었지만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하셨는데 모든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왜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다니엘 예언시대에 마카베오서에서 일어났던 유다 나라에 있었던 재난을 비유하여 재림시대에 있을 재난시를 암시하신 말씀이신 것인데 마카베오상 2장 27-28절에 보면 ‘그리고 마따디아는 거리에 나서서, “율법에 대한 열성이 있고 우리 조상들이 맺은 계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 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모든 재산을 그 도시에 버려 둔 채 자기 아들들을 데리고 산으로 피해 갔다.’ 하였듯이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하고 비유하셨겠지만 또 전쟁이 아니더라도 전쟁의 상황과 흡사한 재난을 비유하여 영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인데 어떤 메시지 책에 보니까 “덕망의 산으로 올라가거라.”
    〈곱비신부님 메시지 책「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268번 ‘거룩한 산’ 편 5.) 그런즉 그분 ‘지혜’의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거라. 너희가 작고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이 지혜를 알게 되리라. 그분의 신적 지성이 너희의 지성을 끌어 당기실테니, 너희가 ‘성서’ 안에 계시된 ‘진리’의 현의를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복음’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이 시대인들에게 용감하게 전할 수 있으리라. 완전한 진리를 밝혀 주며, 그 진리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말씀 뿐이다. 6.) 그분 ‘성심’의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거라. 불타는 나무 숲 같은 그분의 신적 사랑이 너희를 변모 시키리라. 7.) 그러면 그분의 성심을 본받아 너희 마음이 넓어져서, 너희가 바로 세상에서 고동치는 예수님의 마음이 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분을 가장 멀리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는 마음이요, 뜨겁게 타오르는 그분의 무한한 자비로 만민을 감싸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였듯이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난은 인간이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고, 우상을 멀리하고, 재물을 섬기기 보다는 하느님을 섬기고, 우리 자신의 삶을 덕망으로 바꿀때 멈추며 전쟁시처럼 재난에서 구원 받는다는 뜻인 것인데 마태 24장 19절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겨울이나 안식일에 피난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여라.” 하셨듯이 즉 이런 재난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기 마련이지만 묵시 15장 1절을 보면 ‘그 재난은 최후의 재난으로서 하느님의 분노의 마지막 표현’인 가뭄, 홍수, 기근, 지진, 전염병,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 등 물론 많은 나라중에 전쟁을 겪는 나라들도 있겠지만 성서에서도 마태 24장 6절 “또 여러 번 난리가 일어나고 전쟁 소문도 듣게 될 것이다.” 하셨지만 전쟁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연 재난을 당하는 인도, 아프리카 또 북한 같은데를 보더라도 임신한 여자와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을 누가 불행하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가장 큰 재난이 닥쳐오면 이런 재난의 기간에 마태 24장 22절 “하느님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뽑힌 사람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실 것이다.” 또 마르 13장 20절 “주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께서는 뽑으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셨다.” 즉 “하느님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그러나 주께서는 뽑으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셨다.” 고 하신 점을 보더라도 이때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만약 이때가 종말이라면 뽑힌 사람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시고 말고 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전 15장 23절 ‘우리의 부활’ 편에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4절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하였는데 고린전 15장 23절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지 믿지 않은 사람들까지 살아난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24절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라고 한 이 말씀은 고린전 15장 23절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긴 세월이 흘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는 사람들이 살아나게 될 것처럼 24절 또 긴 세월이 흐른 그 다음에는 공심판인 마지막 날이 온다는 말인 것입니다. 아무튼 묵시 20장 5절처럼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듯이 ‘첫째 부활’ 다음에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데살전 4장 15절 ‘주님의 재림’ 편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살아 남아 있다 해도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결코 먼저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16절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17절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였듯이 여기서도 즉 16절과 17절에서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즉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라고 하였으니까 첫째 부활을 말하는 것임을 또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묵시 20장 1-6절 ‘천년왕국’ 편에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였듯이 묵시록의 일곱 봉인을 떼는 것은 묵시 20장 2-3절의 사탄이 갇히는 봉인을 반대로 하는 것이니까 사탄이 갇히는 천년왕국으로써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을 잘리운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듯이 즉 천년왕국 때 살아날 순교자들의 영혼을 말하는 것인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려고 목을 잘리웠으니 묵시 6장 10-11절에서 순교자들이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다는 약속 그대로 하느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리셔서 그 보상의 갚음을 하신다는 말씀의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묵시 2장 10-11절에서 “그러나 너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너에게 씌워 주겠다.” “승리하는 자는 결코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듯이 즉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순교자들이 살아나서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로 휴거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또 묵시 6장 9-11절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에 나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대왕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또 그들은 흰 두루마기 한 벌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다 죽어서 그 수가 찰 때까지 잠시 쉬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하였듯이 즉 ‘순교자들의 영혼이 피갚음을 기다리고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다 죽어서 그 수가 찰때까지’ 라는 이 말씀은 순교의 시대가 끝날때까지 잠시 기다려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순교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죽는 순교자들은 계속 나올 것이고 순교자들을 계속 살려야 하는 계속 휴거한다는 계산이 나오니 말입니다. 그리고 묵시 20장 5절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그러면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천년왕국 재림 때에 이런 첫째 부활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즉 마태 27장 50-53절 ‘숨을 거두신 예수’ 편에서 ‘예수께서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바로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거룩한 도시에 들어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하였듯이 모르긴 해도 그런 일과 흡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둘째부활은 공심판때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니까 묵시 20장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거룩합니다. 그들에게는 둘째 죽음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라고 한 이 말씀은 공심판때는 물론이지만 첫째 부활을 하였으면 라자로 처럼 살아났다는 말인데 처자식도 다 죽었고 공심판 때까지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면 둘째 죽음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하는 경우라면 라자로는 또 죽었지만 이들은 라자로 처럼 또 죽지 않고 즉 라자로의 육신은 3일 전에 죽은 그 육신이지만 순교자들의 육신은 공심판 때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을 육신으로써 공중으로 들려 올라간다는 뜻으로 둘째 죽음의 세력을 받지 않는다는 즉 휴거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묵시 19장 11-14절 ‘흰 말을 타신 분’ 즉 “신의”와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심판하시는 묵시 19장 20절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체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하였듯이 산 체로 받는 심판은 즉 한번도 죽지 않고 산체로 받으니 불못과 불바다는 맥락은 같이 하지만 공심판때와는 때가 좀 다른 부분적인 심판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묵시 20장 7-15절 천년왕국이 끝나고 받는 ‘불바다에 던져’지는 것은 공심판때를 말하며 즉 공심판때는 모든이가 죽고 심판을 받는 것이지만 천년왕국 이전의 불못에 던져지는 불심판은 산 채로 받으니 아마도 하느님께서 창세기 19장 24절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사람들이 타죽었듯이 또 민수기 16장 30-35절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무리들을 그들의 집안 식구들과 함께 ‘산 채로 지옥에 떨어뜨리’셨듯이 그러한 부분적인 불심판을 뜻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묵시 19장 20절에서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체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은 후 ‘그리고 남은 자들’ 즉 묵시 19장 21절에서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 흰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에 맞아 죽었고’ 하였는데 이 죽음은 실제로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칼은 죽이고 살리는 칼이라는 점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였는데 즉 이 말씀은 묵시 19장 17-18절 ‘그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모든 새에게 큰 소리로 “자, 다같이 하느님의 큰 잔치에 오너라. 왕들과 장성들과 장사들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사람들과 모든 자유인과 노예와 낮은 자와 높은 자의 살코기를 먹어라.”’ 하였고 21절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 흰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였듯이 즉 주검을 먹고 사는 높이 나는 모든 새들인 즉 영성적으로 높이 나는 모든 신앙인들이 배부른 기분이 자연히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묵시 20장 11-15절 ‘나는 또 크고 흰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죽은 자들이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그 많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다는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냈고 죽음과 지옥도 자기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 행적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죽음입니다.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하였듯이 즉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동시에 즉 같은 때 ‘죽은 자들이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 라고 하였듯이 ‘크고 흰 옥좌에서의 심판’ 선고를 받기 때문에 바로 최후의 심판인 공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설명으로 마태 24장 3-44절「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은 마태 25장 31-46절「최후의 심판」편과는 천년이라는 기간이 맞을 것이며 묵시 20장 2-3절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였듯이 천년왕국 이전의 심판과 묵시 20장 7-10절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은 자기가 갇혔던 감옥에서 풀려 나와서 온 땅에 널려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찾아 가 현혹시키고 그들을 불러 모아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들을 현혹시키던 그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에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하였듯이 천년왕국 이후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써 천년왕국의 시대가 왔다는 믿음이 굳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루가 19장 11-27절 “‘한 귀족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 오자마자 돈을 맡겼던 종들을 불러서 그 동안에 돈을 얼마씩이나 벌었는지를 따져 보았다.…… 그리고 내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내 원수들은 여기 끌어 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 하고 말했다.’ 즉 그래서 사도행전 1장 6절 ‘사도들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묻기를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하고 물어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즉 토론의 결과적인 질문으로 보아지는데) 이어서 예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를 인정하신 답변은 7-8절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하셨듯이 사도들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지나치게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성령의 힘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충실했으며 현세적으로 기다렸던 영신적으로 기다렸던 하루가 천 년 같이(베드로후서 3장 8절 참조) 기다렸던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를 기다렸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인간의 머리로는 천년왕국설을 맞게든 틀리게든 추측하고 말해 오기도 하였다지만 맞아도 틀려도 인간의 추측들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힘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참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증거하실 때는 그 말씀들을 힘있게 이루실 것이며 천년왕국설도 예언자들이 성서에 기록된 내용 그대로를 증거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교회에서 머지 않아 온전하게 받아들일 때가 오리라는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하였듯이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는’ 종말 재림인 이 세상의 종말은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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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hlgurwn33 2018.09.02 18:38

    209.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②”


    2015. 10. 20. 책 교정 작업을 마치고 준비가 다 되어서인지 오늘 이 복음말씀 루카 12장 35-48절 ‘깨어 있어라’ 편「35절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절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절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절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10. 20.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허리에 띠를 매고”에서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잠옷 바람으로 나가도 되지 뭐 꼭 허리에 띠를 매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 데려가는 것이라면 잠옷 바람보다는 이치적인 비유로도 허리에 띠를 매고 있어야 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리고 루카 12장 35-48절 ‘깨어 있어라’ 편은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이 복음 말씀은 일반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을 연옥 보속 없이 천국으로 곧바로 데려가신다는 깨달음이 있는 말씀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년왕국을 세우시려고 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의 주님의 재림 때 즉 마태 25장【1절 “하늘 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6절 그런데 한밤중에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10절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13절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에서 즉 그 날과 그 시간에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을 맞고,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잠기듯이 즉 기적으로 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이 끝나고 휴거하실 때 즉 루카 12장 35절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절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하셨듯이 주님의 재림 때인 그 날과 그 시간에 즉 기적으로 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이 끝나고 휴거하실 때 천년왕국을 튼튼하게 세우시는데 직접적으로 연관된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의 두 예언자와 함께 연관된 루가 17장 20-37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과 연관된 마태 25장 1-13절 ‘열 처녀의 비유’ 편과 연관된 즉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처럼 이 재림 시대에는 성모님을 특별히 사랑하는 준비하고 있는 깨어 있는 천년왕국 성소 받은 사람들을 함께 데려가신다는 즉 함께 휴거하신다는 깨달음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2015. 11. 25.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성무일도 제1독서 사도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 의한 독서 2장 1-9절 ‘거짓 교사들’ 편【「1절 전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몰래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피를 흘리셔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며 자기 자신들의 멸망을 재촉하는 자들입니다. 2절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 방종하게 되고 그들 때문에 진리의 가르침이 오히려 비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3절 또 그들은 탐욕을 채우려고 감언이설로 여러분을 속여 착취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미 그들을 단죄하셨으며 그들은 반드시 파멸당하고 말 것입니다. 4절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천사들을 용서 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던져서 심판 때까지 어둠 속에 갇혀 있게 하셨습니다. 5절 또 하느님께서는 옛날 사람들이 당신을 배반했을 때에 홍수를 내리셔서 그들을 가차없이 벌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부르짖던 노아의 일가 여덟 사람만은 살려주셨습니다. 6절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두 도시를 단죄하여 잿더미로 만드셔서 후세에 하느님을 배반할 자들에게 보일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7절 그러나 방종에 빠진 무도한 자들에게 시달리던 착한 롯은 구해 내셨습니다. 8절 착한 롯은 그들 사이에서 살면서 날마다 그들의 무도한 행실을 보고 듣게 되어 착한 마음에 큰 괴로움을 당했던 것입니다. 9절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인들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을 읽으면서,
    2015. 11. 28.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성무일도 제1독서 사도 유다의 편지에 의한 독서 1장 1-8, 12-13, 17-25절 ‘죄인들을 꾸짖고 충실한 이들에게 권고함’ 편 특히 3-7절【「3절 사랑하는 여러분, 본래 나는 우리가 함께 받은 구원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 보내려고 여러 가지로 애쓰던 참에 이제 여러분에게 간곡한 권고의 편지를 쓸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한번 결정적으로 전해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분이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4절 하느님을 배반한 몇 사람이 몰래 여러분 가운데 끼여 들어왔습니다. 그자들은 우리 하느님의 은총을 남용해서 방종한 생활을 하고 또 우리의 오직 한 분이신 지배자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로서 이미 오래 전에 단죄를 받았습니다. 5절 여러분이 이미 다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다시 한 번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로부터 구해 냈지만 그들이 후에 믿음을 저버렸을 때에는 그들을 멸망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6절 또 천사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자기가 사는 곳을 버렸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한 사슬로 묶어서 그 큰 심판의 날까지 암흑 속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7절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의 도시들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음란에 흐르고 비정상적인 육욕에 빠졌으므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아서 후세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을 읽으면서,
    주님의 재림 때인 그 날과 그 시간에 즉 기적으로 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이 끝나고 휴거하실 때 천년왕국을 튼튼하게 세우시는데 직접적으로 연관된 즉 묵시 11장 1-14절 ‘두 증인’ 편에서【「7절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그 짐승이 올라와서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절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며 상징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합니다. 11절 사흘 반이 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절 그리고 그 두 예언자는 자기들을 향해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예언자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13절 바로 그 때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그 지진 때문에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하였듯이 즉 ‘두 증인’인 두 예언자를 데려가신다는 말씀이나 또 루가 17장 20-37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편에서【「34절 “잘 들어두어라.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누워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절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하셨듯이 천년왕국 성소 받은 깨어 있는 사람들을 함께 데려가신다는 즉 함께 휴거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묵시록에서, 복음서에서,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서, 유다서에서 특히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에게 ‘후세에 하느님을 배반할 자들에게 보일 본보기’라고 하였듯이 즉 본보기라고 하더라도 교회는 새 계약의 방주이니까 당연히 구원 받은 사람은 많겠지만 주님의 재림 때에 노아 홍수 때나 롯 시대에 구원 받은 사람들처럼 비유하자면 즉 노아 홍수 때는 노아의 일가가 여덟 사람이어서 여덟 사람만은 살려주셨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일가가 아니라도 ‘두 증인’인 두 예언자 주변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데 즉 ‘두 증인’인 두 예언자와 더불어 천년왕국 성소 받은 당신의 종들을 함께 데려가신다는 휴거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베드로 후서 2장 4절에서「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천사들을 용서 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던져서 심판 때까지 어둠 속에 갇혀 있게 하셨습니다.」하였듯이 즉 창세기 18장 14절을 보면 “이 야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내가 다시 찾아 오리라. 그때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하셨듯이 좋은 소식만 전해주신 것이 아니라 곧바로 16-33절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는 말씀도 전해주시고 그 다음날 인지 창세기 19장에서 이사악이 태어나기 전에 벌을 내리셨듯이 즉 베드로 후서 2장 9절에서「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인들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하였듯이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인들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으시다는 내용이 또한 깨달아졌습니다.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328번 ‘새 계약의 방주’ 편【5. 지금은 누구든지 내게 피신해야 할 때이다. 내가 ‘새 계약의 방주’인 까닭이다. 6. 노아 시대에는 주님께서 당신의 무서운 징벌을 피해 살아남도록 미리 정하신 사람들만이, 홍수가 나기 직전 ‘방주’ 속으로 들어갔었다. 너희의 이 시대에는 내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녀 모두를 ‘새 계약의 방주’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는 내가 너희를 위해 내 ‘티없는 성심’ 안에 지어 둔 방주이다.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닥칠 대환난기의 참혹한 시련을, 내 자녀들이 잘 견딜 수 있도록 나의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7. 다른 어떤 곳도 쳐다보지 말아라. 오늘날에도 그 홍수 때와 같이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도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마태 25장 37-38절 참조) 모두가 다만 자기 자신이나 현세적 이익, 쾌락, 온갖 방식을 동원한 정욕 충족 따위에 생각이 쏠려 있을 뿐이다.】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방주」: 구약성경 총24절 + 신약성경 총4절 = 구, 신약 총28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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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hlgurwn33 2018.10.11 17:31

    영성시집 ‘211.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①’ 편,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 (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참조.
    ※ 인터넷 다음 블로그「성 말라키 예언」,「미래의 교황에 관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예언」,「미래의 교황에 대한 성 비오10세 교황의 예언」,「교황 레오 13세의 기적」참조.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407번 ‘그 짐승의 숫자인 666’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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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chlgurwn33 2018.10.11 17:33

    영성시집 ‘211.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①’ 편,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 (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참조.
    ※ 인터넷 다음 블로그「성 말라키 예언」,「미래의 교황에 관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예언」,「미래의 교황에 대한 성 비오10세 교황의 예언」,「교황 레오 13세의 기적」참조.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407번 ‘그 짐승의 숫자인 666’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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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chlgurwn33 2018.10.11 17:35

    영성시집 ‘211.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①’ 편,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220. 카이스트 김명현 박사님의 창조론 강좌를 듣고.... (전쟁 없는 평화통일)’ 편 참조.
    ※ 인터넷 다음 블로그「성 말라키 예언」,「미래의 교황에 관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예언」,「미래의 교황에 대한 성 비오10세 교황의 예언」,「교황 레오 13세의 기적」참조.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407번 ‘그 짐승의 숫자인 666’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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