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마귀에게 이끌리어 높은 산에 가셔서 마지막 시험을 받으신다. 마귀는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예수님께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이라 말씀하심으로 시험을 이기시고 천사가 나와서 수종을 들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 세 번째 시험은 어떤 면에서 보면 신앙의 근간이다. 무엇을 경배할 것이며, 무엇을 얻기 위하여 누구를 섬길 것인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는 지금 마귀가 보여주는 천하만국이 정말로 실제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신기루나 환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정말로 본질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나타나고 형상화된 물리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세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표현된 것이고, 나타난 것이 본질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번째 시험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마귀에게 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세상과 그 영광을 얻기 위해서 절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주인처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또 그런 자신의 삶이 영광을 얻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마귀에게 절을 하라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라는 형식이 본질이라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은 형식이다. 본질이 아니다. 진정한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로 이 세상을 지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LOGOS(말씀, 계획, 계산, 뜻, 의)가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겼으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빛을 만난 것과 같다는 하나님의 의가 있어서 그것이 눈에 보이는 광선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쉬운 말로 해 본다면 그것은 내용과 형식에 관한 것이다. 책으로 본다면 작가의 생각이라는 내용이 문자와 인쇄물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그 형식을 있게 한 의도, 곧 의라는 것이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홍길동이지만 그 본질은 권선징악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도 눈에 보이는 세상이 본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있게 한 하나님의 말씀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에서 모든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그와 같은 성품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본질로 여기고, 본질인 하나님의 말씀이 표현되고 구현되는 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 바로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이 현물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종합하여 보면 지금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시험은 단순히 예수님이 마귀에게 경배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세상의 본질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것을 본질로 보느냐에 따라 경배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본질로 보는 이는 사탄을 경배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마귀에게 절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우리 육신의 문제를 구하는 것 밖에 하지 않는 신앙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것이나, 이 세상의 본질이 눈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표현이므로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먼저 된 하나님의 말씀, 이 세상의 본질인 하나님의 의를 볼 수 있고, 그것을 가지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 경배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것 보다 이 세상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이 세상의 것을 더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고 온전한 법과 순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이 받는 시험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하려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죄에 있다는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들이 받는 시험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기는 것인지를 보이심으로 우리 모든 인생들의 구원의 길을 보이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정말로 이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 체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흑암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본질을 모르면 당연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왜 사는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세상의 일부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인 세상을 알지 못하므로 자신도 알지 못하고, 무엇보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본질을 알게 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본질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목적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살고 또 간간히 발생하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는 다 외면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영지주의다. 이 세상의 문제는 먼저 이 세상을 있게 하고 나타나게 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서부터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구도의 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스스로를 표현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도, 그리고 특별히 그 이미지를 나타낼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형식과 형상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는 것은 세 번째 시험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형식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존재가 사람이다. 즉 사람은 형식이 없으신 하나님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라는 내용과 사람이라는 형식이 만나야 온전해 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열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생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그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에게는 구원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삶이고, 그 삶이 그리스도의 삶이고, 그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내용이고 사람은 그 형식인데, 그것이 하나가 된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마귀에게 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그럴 수도 없지만 예수님께서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만 경배하는, 하나님의 의가 그 내용이자 본질인 육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하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모든 인생들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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