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5)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6. 14. 15:37 Writer : 김홍덕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연약한 양과 같은 운명으로 드려진 제사이고, 아벨이 드린 양을 바치는 제사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개인 개인의 교훈으로 가져 온다면 사람이 연약하고 때로 추하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 해도 화장실의 모습은 다 똑같다. 그래서 화장실은 밀폐된 것이다.


모든 사람 안에는 가인과 같은 마음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양이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노력하여 얻은 소출과 같은 세상의 성공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종교든지 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을 신앙하는 신이 기뻐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시다. 그런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들도 가인의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가인의 제사를 독려하고, 아벨과 같이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면 신앙 없는 것으로 취급해 버린다. 아벨을 죽이는 것이다.


십자가는 너무 연약한 것이다. 그런 제사를 드리는 곳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두려울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와 같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온전한 제사라고 믿는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 한다.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


하지만 십자가는 다르다. 그렇게 될까 두려워 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지 않는다. 설사 그것인 신앙에 관한 것이라 해도, 그렇게 될까 두려워 한다면 다 가인의 제사이다. 교회에서 욕 먹을까 두렵다면 그 교회는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두려워야 그것이 아벨의 제사인 것이다.


그런 가인에게 자손들이 났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두발가인이다. 두발가인은 최초로 철을 다룬 사람이다. 영화 노아에서는 어이 없이 나오지만, 그렇더라도 한가지 동일한 것은 세상의 성공과 육신의 성공을 최고로 아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영화 노아는 좀 어이 없었다>


가인의 자손, 즉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제사로 받아져야 한다는 마음이 낳은 것들은 두발가인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가인 자손들의 이름이 가진 의미를 하나 하나 알지는 못하지만 결국 가인의 그런 사상이 표현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가인의 손에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아들을 또 주셨는데, 그 이름은 <셋>이다. 이 이름의 어원은 '대신하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에게서 아들이 낳는데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했다. 그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죽을 수 밖에 없는"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셋이 아들의 이름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지었다는 것은 자신 안에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늘 그 사람의 속사람이 표현된 것이기에 이는 셋의 고백인 것이다. 즉, 셋과 에노스의 세대가 되니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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