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23. 인생의 시련을 이기는 하나님의 이름
사람은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이 자기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모욕과 수치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지어 그 수치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세상과 사회에서는 그런 자존감과 의지가 때로는 동정을 받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정작 모욕을 당하는 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창조한 사람이 자기 의를 이루지 못한 것을 모욕과 부끄러움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비유하자면 회사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 자기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화내고 짜증내며 실패로 여기는 직원과 같다.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로 어이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 이 비유와 같은 일은 실제 세상과 기업에 많이 있기도 하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창조한 목적, 인생을 주신 뜻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걸 실패로 여기며 부끄러워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거대한 골리앗의 주눅든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놀랍게도 신앙인들은 성공과 실패, 영광과 수치를 나누는 세상의 기준으로 실패와 수치를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은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생긴다. 그래도 육신의 삶이 어느 수준은 되어야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긴다. 더 나아가 삶이 세상적인 기준에 미달하는 건 하나님께 뭔가 잘못한 게 있어 받게 되는 징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로 골리앗 앞에 주눅든 모습이다.
골리앗은 말한다. 나와 겨루자고. 세상에서 성공해야 너희 하나님이 있다는 걸 믿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말한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싸우자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 말을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으로 분명히 듣고 분개했다. 세상에서 성공한 게 아니라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는 가치관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무기가 아니라 고작 지팡이 하나와 물매에 쓸 강바닥에서 모난 것이 다 깎인 돌 다섯 개를 들고 맞섰다.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삼상 17:40)
사울은 다윗에게 세상적인 무기와 방패를 주려 했다. 사울은 세상의 기준으로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 했던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블레셋은 그의 그런 믿음과 가치관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왕인 자신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심으로 쳐들어왔는데, 여기에 또 세상적의 무기와 방패를 다윗에게 주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상황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분개한 사람이었기에 사울의 갑옷과 칼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세상적인 방법은 언제나 어색하고 자기 몸에 맞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안다. 성경은 이것을 양심이라고 한다. 이 양심이 화인 맞으면, 곧 이 양심을 상실하면 하나님도 구원하시지 않는다고 하시는 건, 자기 가치관이 세상과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에게 세상의 무기는 어색하다.
다윗이 들고 간 무기는 지팡이와 양을 지킬 때 쓰던 물매와 돌 다섯개다. 목자의 지팡이는 양이 가야 할 바른 길을 인도하는 이정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자가 인도하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외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이름이란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삶으로 세상을 이기는 존재다. 반면에 골리앗은 세상이 정한 성공과 위대함의 기준 그 자체다.
다윗은 물매에 쓰려고 시냇가에서 구한 돌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돌은 법이다. 돌로 사람을 쳐 죽이기도 했는데 그건 법으로 심판한다는 의미다. 사람은 자기가 왕인 자기 인생을 다스리는 법이 있는데 돌에 새긴 것처럼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다. 자기 옳음이 있고, 자기가 옳다는 걸 주장하는데 그건 돌의 모난 부분과 같다. 모난 부분은 돌을 고유하게 만드는데 이는 자아를 분명히 해 독보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사람의 마음과 같다.
반대로 매끄러운 돌은 곧 말씀 안에서 자기 모난 것, 자기가 옳다는 것과 선명한 자기 정체성이 모두 갈리고 매끄럽게 된 사람이다. 모난 돌처럼 나의 자아가 선명한 게 아니라 그런 자아가 서로 부딪히며 갈려서 매끄럽게 된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경영이 함께한 사람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화평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대변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경륜에 순종할 수 있게 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침 그 수도 안식의 희년을 상징하는 다섯이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이야기는 교훈적 동화에 머물지 않는다. 골리앗과 같은 세상의 위협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한다. 사람들은 세상의 위협과 시련과 어려움을 이는 이, 눈은 눈으로 갚듯이 더 큰 능력과 세상의 권세와 성공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어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그게 아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자기 마음 밭에 있던 옳음과 주장이 다 갈아 엎어져 하나님의 이름 곧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과 뜻을 표현함으로 세상을 이긴다. 이것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을 이긴 이김이다. 다윗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예수님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일러 주신 건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다’는 말씀이다.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능력으로 세상의 능력을 이기기를 바라지만, 정작 세상을 이긴 이김은 십자가다. 낮아지고 섬기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이긴다.
자기 주장이라는 모난 것 다 갈리고 낮아진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표현하시고자 사람의 육신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승리는 바로 이것을 말씀하시는 사건이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세상이 주는 시련을 이길 것인지를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