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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상) 21.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

김홍덕 2025. 9. 10. 07:38

(삼상 16:14-23)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후 사울은 악한 신()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은 다윗이 사울 가까이, 왕궁에 거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악한 영에 시달리는 사울이 선택한 대책은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이었고, 수금을 잘 타던 다윗이 그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건 악신(악령)을 하나님께서 부리신다는 말씀이다. 일반적 신앙 논리로 조명하면 대적, 즉 적군을 부린다는 말이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귀나 악한 영을 부리신 일이라고 하면 욥을 시험하는 마귀의 일을 떠 올리지만, 굳이 그걸 구분한다면 욥의 일은 하나님이 마귀를 부리셨다기 보다 그냥 자유롭게 두고 관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므로 사울의 일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비슷한 사례가 몇몇 있는데, 아비멜렉이 기드온의 70아들을 죽였을 때 악한 신을 보내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도록 하신 일, 아합 왕의 선지자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을 보냈다는 등의 사례가 있다.

 

문장으로 보면 이견 없이 하나님께서 악한 영도 다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종말까지 사탄은 하나님과 대적한다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에 상충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천지의 주관자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귀든 사탄이든 수천년간 대치관계에 있다는 발상 역시 상식적이지 않다. 그러려면 사탄이나 악령이 하나님과 한 링에 오를 체급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걸 인정한다면 유일한 전지전능자라는 하나님의 정체성은 탄핵된다.

 

사람들은 그냥 앞에 있는 주제에 매몰되곤 하는데,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세상의 종말에 하나님께서 사탄의 모든 권세를 물리치신다는 확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은 세상의 종말까지 하나님은 사탄이란 대적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여지를 생성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굳이 예수님 재림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언제나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절대자다.

 

뿐만 아니라 사탄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 성장하도록 경영하신다. 즉 사탄이 지랄을 해도 하나님께 그건 수단적 상황이 될 뿐 하나님께 대적이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정체성에 관한 이런 지극히 상식도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이 아니라 오히려 수단 중 하나다. 마치 독사의 독을 약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유일한 존재는 사람이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할 수 있다. 이건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셨기에 순종할 수 있는 선택을 사람에게 맡기셨는데 사람이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게 불순종이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적하는 게 사탄의 본질이라면 진정한 사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유일한 존재는 사람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악령과 악신이 든 사람이다. 사울은 바로 이런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굳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악한 영을 보냈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지 않고 자기가 정한 대로 하나님을 믿고,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그것이 바로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일이라는 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특히 우리가 악령이라고 좋지 않은 이름을 붙이는 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인데, 이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떨칠 수 없는 인생의 괴로움, 그것이다. 존재가 자기 목적을 벗어나면 그 자체로 괴롭다. 간첩은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불안하고 괴로우며, 미운 오리새끼는 오리들이 굳이 뭐라하지 않아도 비참하며, 망치가 두부나 야채를 자르는 자리에 있으면 금방 버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자 나에게 인생을 주신 뜻을 벗어나서 사는 인생은 그 자체로 괴로움이다. 악한 영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사례에서 귀신 들린 사람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귀신 들렸다는 건 정신을 상실한, 즉 목적을 상실한 사람이며 자기 뜻이 육신 곧 삶을 주관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는 건 하나님의 뜻인 존재 목적을 상실한 사람에게 정신 곧 하나님의 뜻을 회복시키심을 보이시는 일이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이런 불순종, 곧 악한 영의 행사를 하나님의 경륜으로 이용하신다. 악령이 든 사울, 그러니까 불순종하는 사울의 괴로움을 이용해 다윗을 등용하고, 다윗이 궁궐로 들어가는 계기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불순종한다고 물러서지 않으신다. 사람의 불순종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된다. 타산지석이 되는 것은 물론 불순종하는 사람을 인하여 순종하는 사람이 다윗처럼 거룩하게 구분되고 영광을 얻는다.

 

하나님은 사상 종말의 때까지 밀려서 기회를 엿보시는 분이 아니다. 사탄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대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한 존재며, 오히려 진정한 하나님의 대적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불순종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그는 인생이 괴롭다. 그리고 그런 괴로움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은혜가 된다. 불순종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함의 영광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