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18. 순종하는 주권
(삼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아주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고, 모든 것을 죽이라고 하셨는데, 사울은 소와 양 중에서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목적으로 살려 두었다가 이를 책망하는 사무엘 앞에서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변명했다. 이때 사무엘이 사울을 향해 책망한 교훈적 말씀이다.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마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는 걸 강조하신 말씀이다.
순종이라고 하면 진정한 순종이 뭔지, 순종하면 받는 복과 불순종의 심판 간은 걸 이야기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에는 순종해야 하는 이유와,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지는 않는 순종의 이면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주권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언급한대로 순종의 이면에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사람에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지 자기 뜻대로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 권한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권은 곧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운다.
사람은 스스로 순종을 결정할 주권이 주어졌다.
사울이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은 이걸 알고 있다. 그럼 왜 심판이 있는가? 그건 순종할 수 있는 권한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지 자기 뜻대로 살 것인지를 결정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 자기가 결정하지 않았는데 책임을 묻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쉬운 말로 ‘맡은 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 순종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심판이 있는 구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존재로 창조하셨다.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도록 하시겠다는 뜻으로 창조하셨다. 이 하나님의 목적이 온전하려면 사람이 자기 결정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순종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사람을 통해 성품을 표현하시려 한 하나님의 의도는 불온전하게 된다. 강제로, 자기 의식도 없이 표현한 건 온전하지 않다.
사람이 스스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루어져…
피조물인데 놀랍게도 사람은 자기 주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만든 어떤 것도 사람이 의도한 바를 넘어설 수 없고, 또 그러길 바라지도 않는다. AI가 대단하지만 그 대단함은 사람이 의도한 바다. 그런데 사람은 피조물인데 자기 주권이 있다. 짐승들은 본능에 따라 살 뿐인데, 사람은 이에 더해 자기 의지로 삶을 결정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자신이 존재라는 것과 존재는 존재 목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자기 주권이 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 인생의 주권을 맡기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 그 존엄성이 자기가 창조했거나 자기가 결정했거나 선택한 게 아닌데 자기 것으로 안다. 앞서 말한 자기 인생에 대한 주권이나 존재라는 인식, 그 어느 것도 자기 공로로 얻은 게 아닌데 자기 것으로 안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사는 게 당연한 권리인 줄 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처럼, 자기 공로도 아닌데 자기 뜻대로 되니 자기 권리인 줄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창조주인 하나님께는 당연히 사람에게 그런 주권을 주신 이유가 있는데, 사람이 그 목적을 벗어나면 그게 죄다. 존재가 존재 목적을 벗어나면 그게 죄다. 죄라는 말의 원어도 그런 뜻이다. 밥 먹다가 한방울이라도 김치 국물이 자리를 벗어나 옷에 튀면 크게 번거롭다. 그게 죄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주권을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그게 죄다. 그래서 심판을 받는다.
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축복과 심판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창조주와 주권자의 목적을 이룰 의무가 생긴다. 순종에 따르는 축복은 인과율에 관한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니다. 피조물로서 존재 목적에 순종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수행하는 게 순종이다. 이 당연함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인생의 주권까지 주셨다. 그건 사실 맡은 것이다. 그래서 청지기라 하고 맡은 자에게 충성을 구하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건 옵션이 아니라 의무다. 인생에 대한 주권도 스스로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을 사람의 선택에 맡기신 셈이다. 이건 심판하시거나 시험하시려는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창조한 목적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로 창조된 사람은 전적으로 자기 주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해야 창조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인생의 주권을 맡기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오롯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자기 주권으로 결정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자기 인생을 주관할 주권을 맡기셨다. 그리고 그 주권으로 결정해야 할 순종의 목표, 곧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 사람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전하셨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이 창조한 목적대로 사람의 인생과 모습을 보이시려고 사람과 같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사람이 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 놋뱀을 보듯이 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사람이 이 하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모든 걸 예비하셨다.
우리는 순종을 신앙의 훌륭한 옵션으로 생각한다. 또 삶에서 복을 얻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불순종하면 받는 심판과 손해를 회피할 목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에게 창조 목적에 순종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며 법이고 의무다. 이 법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권마저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래야 스스로 순종할 수 있고, 그런 순종이어야 온전한 순종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주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 결정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걸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 죄를 시인하면’이라고 하신다. 무엇보다 사람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길을 돌아서지는 않는다. 그렇게 돌아서기만 하면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영접하신다. 이 하나의 순종을 바라시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인생의 주권을 맡기시고, 이 하나의 순종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