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16. 제사에 합당한 사람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백성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받은 사울은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하는 바람에 블레셋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수비대가 공격받자 반격하는 블레셋의 기세에 2,000명이던 사울의 군대는 600명만 남고 다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에 사울이 번제를 드린 일이다. 사무엘은 7일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먼저 제사를 드린 일이다.
이 일로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의 날이 길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을 구하실 것"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책망한다. 다행히도 전쟁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로 이기게 된다. 요나단이 자기 칼을 든 병사와 둘이 블레셋 군사 20명을 죽이니 블레셋은 공포를 느끼고,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일으키시니 두려워하는 블레셋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여 패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건 전쟁의 승패보다 사울이 성급함으로 번제를 드린 일로 하나님께서 그를 떠난 것이다. 이 일은 제사장 신분도 아닌 사울이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표면적 사실이 교훈의 본질이 아니다. 다윗도 법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제사를 직접 드렸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사장이라는 <신분>이 제사의 자격이라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건 제사장이 아닌데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제사에 합당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상태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
핵심은 신분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상태다. 사울은 전쟁이 불리해지자 초조해졌다.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제사라는 형식을 믿었다. 제사를 드리고 전쟁해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상태였다. 이는 제사장 엘리의 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언약궤마저 빼앗기는 큰 실패와 같은 구조, 같은 상태다.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게 목적인 사람이 아니라 전쟁에 이기는 게 목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사울의 모습을 두고 오늘날 신앙인들은 "제사장도 아닌데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에게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 사건은 예배를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는 제물이 되는 제사가 아니라 육신의 일이 자기가 기대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걸 목적으로 예배드리고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 성공을 보상으로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
사울의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 목적을 위해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모습
대표적으로 <개업 예배>가 여기 속한다. 아무리 포장해도 개업 예배의 목적은 사업 성공이지 예배 자체가 아니다. 사업이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거나 사업에 성공해서 교회와 선교사업에 힘을 보탠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헌금이나 선교헌금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처럼 드리는 거지 하나님께서 사업을 성공하게 해 주시면 내겠다는 건 하나님을 기만하는 일일 뿐 예배가 아니다. (사실 이런 건 미신적 신앙이다)
성급하게 제사를 드린 유명한 사울의 일은 제사,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누구냐에 관한 교훈이다. 제사로 드리는 제물인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목적에 합당한 사람으로 드려지느냐가 제사와 예배의 핵심이다.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이 목적을 두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려지는 것이다.
순전하게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내 삶을 드린다면 신분이 제사장이나 목사가 아니어도 온전하다. 매 주일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나 내가 온전한 제물이 되었다면 제사의 시각이 특정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된 사람은 삶의 모든 순간이 제사요 예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