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사무엘상

(사무엘 상) 16. 제사에 합당한 사람

김홍덕 2025. 8. 18. 12:41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백성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받은 사울은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하는 바람에 블레셋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수비대가 공격받자 반격하는 블레셋의 기세에 2,000명이던 사울의 군대는 600명만 남고 다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에 사울이 번제를 드린 일이다. 사무엘은 7일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먼저 제사를 드린 일이다.

 

이 일로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의 날이 길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을 구하실 것"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책망한다. 다행히도 전쟁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로 이기게 된다. 요나단이 자기 칼을 든 병사와 둘이 블레셋 군사 20명을 죽이니 블레셋은 공포를 느끼고,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일으키시니 두려워하는 블레셋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여 패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건 전쟁의 승패보다 사울이 성급함으로 번제를 드린 일로 하나님께서 그를 떠난 것이다. 이 일은 제사장 신분도 아닌 사울이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표면적 사실이 교훈의 본질이 아니다. 다윗도 법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제사를 직접 드렸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사장이라는 <신분>이 제사의 자격이라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건 제사장이 아닌데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제사에 합당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상태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

 

핵심은 신분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상태다. 사울은 전쟁이 불리해지자 초조해졌다.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제사라는 형식을 믿었다. 제사를 드리고 전쟁해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상태였다. 이는 제사장 엘리의 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언약궤마저 빼앗기는 큰 실패와 같은 구조, 같은 상태다.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게 목적인 사람이 아니라 전쟁에 이기는 게 목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사울의 모습을 두고 오늘날 신앙인들은 "제사장도 아닌데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에게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 사건은 예배를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는 제물이 되는 제사가 아니라 육신의 일이 자기가 기대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걸 목적으로 예배드리고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 성공을 보상으로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

 

사울의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 목적을 위해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모습

 

대표적으로 <개업 예배>가 여기 속한다. 아무리 포장해도 개업 예배의 목적은 사업 성공이지 예배 자체가 아니다. 사업이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거나 사업에 성공해서 교회와 선교사업에 힘을 보탠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헌금이나 선교헌금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처럼 드리는 거지 하나님께서 사업을 성공하게 해 주시면 내겠다는 건 하나님을 기만하는 일일 뿐 예배가 아니다. (사실 이런 건 미신적 신앙이다)

 

성급하게 제사를 드린 유명한 사울의 일은 제사,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누구냐에 관한 교훈이다. 제사로 드리는 제물인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목적에 합당한 사람으로 드려지느냐가 제사와 예배의 핵심이다.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이 목적을 두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려지는 것이다.

 

순전하게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내 삶을 드린다면 신분이 제사장이나 목사가 아니어도 온전하다. 매 주일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나 내가 온전한 제물이 되었다면 제사의 시각이 특정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된 사람은 삶의 모든 순간이 제사요 예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