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14.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해결하겠다는 마음
(삼상 11장)
성경의 흐름으로 사무엘 상 10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다. 그런데 11장에 보면 암몬이 쳐들어왔을 때 왕인 사울은 밭에서 소를 몰고 있었다. 기름 부음을 받긴 했지만 아직은 백성들이 사울이 왕이라는 데 크게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10장 마지막에 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방 민족인 암몬사람 나하스가 쳐들어온다. 나하스는 이름의 뜻이 '뱀' 또는 '독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데,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하겠다고 했을 때, "너희들 오른 눈을 다 뽑으면 항복을 받아 주겠다고"라고 할 정도로 악하고 독한 사람이었다.
이 소식은 사울에게 전해졌다.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고 백성이나 관료가 가서 보고한 게 아니라, 나하스의 협박과 모욕에 우는 백성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백성들은 "누가 우리를 구원할까?"라며 울었다. 자기들이 왕을 원해서 하나님께서 왕을 세웠는데, 왕에게 가서 자기 안녕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왕이 아니라 열방의 왕을 구했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생각에 사울은 나하스를 세상 가치나 기준으로 이길 수 있는 왕이 아니었다.
백성의 울음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한 겨리의 소, 그러니까 소 두 마리를 잡아 각을 떠서 이스라엘 각 지경에 보내면서,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않으면 이 꼴로 만들겠다"라고 했고, 이에 백성들은 두려워 유다 족속이 삼만,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사울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전쟁은 사울과 함께한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난다. 성경은 암몬 사람이 두 명이 함께 도망가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군사력으로 사울이 암몬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들이 원해서 세운 왕에게 전쟁을 의지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언약궤를 빼앗길 때 자기들끼리 전쟁에 임했다 크게 패했었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결국 전쟁은 사울이 나서서 크게 이기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도, 자기들이 원했던 왕도 의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임하시고 함께 하시니 전쟁은 아주 쉬운 일이 되었고,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모든 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 아닌지로 결정된다는 걸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암몬 자손의 조상을 소환해 봄 직하다. 암몬은 소돔이 멸망할 때 피한 롯의 두 딸이 이제 자기들에게 아들을 낳게 해 줄 남자가 아버지밖에 없다며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한 후 얻은 아들 중 둘째 딸의 아들 벤함미의 후손이다. 암몬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주관하려는 마음이다. 암몬이 쳐들어왔다는 건 우리 마음에 하나님보다 앞서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고 주관하겠다는 생각이 생겼다는 뜻이다.
암몬의 침략은 하나님의 일을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는 우리 안에 생기는 교만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간혹 자기가 하나님보다 앞서서 하나님께 열정을 다하면 아주 독하고 무서워진다. 대표적인 게 전 재산을 헌금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이런 건 극단적인 모양이긴 한데, 사람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 자기가 앞장서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게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을 행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 일을 해야 한다면 공부를 등한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마음은 정말 단호하다. 오른눈을 다 뽑아야 화평하겠다는 나하스의 마음이 투사된 듯한 모습을 일상에서 보인다. 그런 마음은 하나님이 보실 땐 이방인의 마음이지만 신앙인들이 이걸 이기지 못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암몬과 화친을 시도한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보다 앞서 행하는 일에 스스로 명분을 주고, 괜찮다고 타협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우리 안에 있는 이방인의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마음을 이기려면 사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시간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살아가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사울이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암몬을 이겼다는 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앞서 행하실 때 이기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남다른 능력이나, 남에게 미치지 못하는 연약함과 무관하게 나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암몬을 물리친 사울은 비로소 백성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받게 된다. 의미가 있는 건 하나님의 영이 함께했을 때,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승리를 이루어냈을 때,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한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순종할 때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씀하심이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위하는 간절하고 투철한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더 열심을 내어 섬기는 건, 일면 충성스럽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누구보다 하나님이 잘 아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잘하신다. 우리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다면, 그건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건 하나님이 일하실 때 사용되어야 하는 거지 나의 열정으로 앞서 행할 일은 아니다. 그건 암몬으로 투사된 우리 마음의 교만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3)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해결하겠다는 암몬 같은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이 아니다. 이건 물리쳐야 하고,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마음이다.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가만히 서서 주의 행하심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은 하나님이 하셔야 일이 제대로 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자기 뜻을 위하여 창조하시고, 자기의 뜻을 이루시는 곳이다. 결국 하나님의 일이든 나의 일이든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