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11.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
(삼상 8:1-9)
사무엘 상 7장은 어떻게 보면 사무엘이 죽는 25장까지의 전체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사무엘이 늙었다는 걸 알리며 시작하는 8장은 사무엘 시대 후반부의 일들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사무엘이 늙자, 그간의 평화 시대가 종식될까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왕을 구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민수기 11장에도 있다. 광야에서 만나만 먹던 이스라엘은 고기가 먹고 싶다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때 원망하는 내용은 애굽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었다. 애굽이 더 좋다는 건 하나님의 구원 없이 세상의 종으로 살던 때가 더 나았다는 말인데, <열방과 같이>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희망 역시 그것이다.
고기를 먹겠다고 애굽을 그리워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한 달간 메추라기를 보냈고, 백성들의 이에 아직 메추라기 고기가 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그리고 지금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왕이 너희를 압제할 것이라는 분명한 경고에도 이스라엘은 왕을 원했고, 결국 역사적으로 보면 결국 왕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왕을 필요로 했다면, 그들의 신앙이 조금 어리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듭나면 본성 자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된다는 걸 몰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마음은 기특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왕을 구한 게 아니다. 열방과 같은 왕을 구했다. 이방인들의 평안을 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왕이란 존재의 권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왕은 막강한 권력으로 사람을 강제할 수 있는 존재다. 왕명은 목숨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삶을 주관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주관하는 힘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내 세계의 왕이라 할 수 있다.
왕은 결국 통제력이다. 그게 권력이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이 되어 나를 주관하게 된다. 왕을 구한다는 건 이게 되지 않는다는 걸 실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신부나 수녀가 결혼하지 않는 게 이 맥락이다. 자기 육신을 제어하는 제도, 이게 왕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런 생각이 바로 하나님 앞에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하는 신앙이다.
그러나 왕도 고양이를 '멍멍' 짖게 할 수는 없다. 어떤 권력도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사람을 개나 고양이로 만들 수는 없다. 생명의 본성이 사람과 생명을 주관하는 가장 강력한 주권이다. 우리 구원을 거듭남이라고 하는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가진 본성은 그 어떤 왕의 권력보다 강하게 나를 주관한다.
그리스도의 본성보다 더 강하게 나를 주관하는 왕은 없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가장 강력한 통제력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나의 생명, 내 육신의 삶의 본성이 되는 것보다 강한 힘은 없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생명으로 거하시므로, 그 생명의 본성이 나를 주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게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수 있는데, 생명이라면 생명의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면 어렵지 않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거듭난 생명이 나타내는 본성으로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은 열방의 왕처럼 나를 통제할 필요가 없다.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나를 이끄신다. 그건 본성으로 이끄는 것이므로 세상의 어떤 왕보다 강한 권세다. 하나님께서 나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는 게 그것이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5)
성경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더 강한 자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나를 주관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실패한다. 나를 다스리는 왕에게 힘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내 생명과 삶의 본성이 된다면? 그땐 다르다. 본성보다 강한 주권자는 없다. 그래서 거듭난다고 한다. 사람이 거듭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게 된다.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본성이 필요하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