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07. 블레셋에게 대패한 이스라엘
(삼상 4:1-11)
사무엘이 장성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기 시작할 즈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처음 전투에서 4,000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참패하자,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로 패하게 하셨는가?"라며 탄식하다 묘수를 짜냈는데, 그건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언약궤를 가져다가 그 힘으로 전쟁에 임하였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다. 블레셋이 이를 두려워했었는데,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다시 전투를 벌였고, 이번에는 더 크게 패해 삼만 명이나 전사했고, 이 전투에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다.
사무엘 상 4장을 시작하는 말씀은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 되니라"다. 그런데 사무엘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쟁을 명령했다거나 지원했다거나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는 말도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터로 나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에게 나타났는데 사무엘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사무엘은 미스바 대 성회 이후 전쟁에 처음으로 참전한다.)
성경 속 전쟁은 오늘 우리에겐 영적 전쟁의 모델이다. 사무엘 상을 시작하면서, 우리 구원의 역사를 왕들의 이야기로 말씀하신 건 우리는 하나 같이 자기 세계의 왕들이기 때문이란 걸 설명했다. 전쟁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왕인 세계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사람들은 영적 전쟁을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광명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러나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신다고 하신다. 이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위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내용을 채워야 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이 거하시면 우리가 왕이 된다.
이 전쟁이 패한 이유는 우선 하나님이 명한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사람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역사할 거라고 믿은 것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전쟁이 아닌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승리의 부적으로 삼았다. 즉 내용은 없는데, 하나님의 의와 뜻은 없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라는 형식을 사람이 자기 계획대로 사용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데 언약궤라는 형식에만 의존하는 건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다.
먼저 하나님께서 명한 전쟁이 아니라는 건 성경의 기록으로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어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정황상 엘리 제사장은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므로 엘리가 명한 전쟁일 수는 있다. 방탕한 두 아들이 참전했다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와 사무엘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엘리와 함께 하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와 무관한 전쟁인 셈이다.
더 핵심적인 이유는 언약궤와 관련이 있는데, 이스라엘이 첫 전투에서 대패하자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장에 가져오기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사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새겨 주신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담긴 금 항아리가 들어 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가 있으면 하나님도 함께하실 거라 믿었다. 신권으로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 믿기도 하는 오늘날 신앙인들에겐 '이게 무슨 문제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내용 없는 형식에 의지하는 것으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없는데 하나님의 의를 상징하는 형식이나 물건이 의미가 있을 리 없다. 세상 모든 만물이 그렇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 하나님의 뜻과 의가 없는 실존은 존재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전쟁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다 놓는다고 전세가 역전되지 않는다.
나의 세계에서 왕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여러 갈등과 다툼을 직면하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다. 때론 그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확신하기도 하지만 다른 결과를 손에 쥐기도 한다. 결국 그 차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가 핵심이다. 언약궤라는 형식에만 의지한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다툼에 그리스도인이니까 잘될 거라는 자기 확신으로 임하여 실패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기까지 한다. 언약궤마저 빼앗기는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영적 다툼과 갈등을 이기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육신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을 믿는 형식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행함이 하나가 되어야 영적 전쟁을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믿음과 행함, 형식이 하나가 되는 가장 온전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내 삶의 본성이 되는 것, 이것이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된 삶이고,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함께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