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
우리는 교회에서 때로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많은 경우는 예배를 대표하는 기도에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회개할 때 …
이 표현은 참 겸손한 표현이다. 하지만 좀 깊이 생각하면 다른 부분이 있다.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는 게 과연 등가가 맞는 지다. ‘하나님이 그렇게 계산이 안 맞는 신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라는 비유나 표현은 반만 맞다. 전체 인류나 사례 중에 반이 아니라, 두 가지 상황 중 하나라는 뜻이다.
먼저 사람은 왜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는 생각해 보면, 하나는 아들을 보내시면서까지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늘 불순종하는 자신을 탓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정확히는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자기의 능력과 마음과 행동 때문이다. 이 둘 중에 중요한 건 사실 후자다.
사람은 자기를 연약하게 본다. 그뿐 아니라 부정하게 본다. 이 이유로 불순종한다 생각하고, 불순종하기에 이렇게 본다. 그러나 사람이 연약하든 온전하든 어쨌든 하나님이 이렇게 창조하셨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 사람이 자기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은 계획이 있어 이렇게 창조하셨고, 이렇게 인생을 살도록 하셨다. 그러니까 사람의 관점에서 볼 대 연약하고 부족하게.
그러나 모든 존재는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 집이나 회사나 공장 같은 곳에 있는 물건들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기준에 따라 강해지고 약해진다. 존재는 그대로인데 기준에 따라 그렇게 된다. 비닐 봉투와 칼을 비교해 보자. 일반적으로 칼이 훨씬 강하고, 비닐 봉지는 칼의 물리적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칼은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칼에 담아 버릴 수는 없다. 강하고 유익함의 기준(목적)이 무엇을 담는 능력이 되면 칼은 완전 무쓸모의 물건이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뜻, 무엇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표현하고 있다. 우주와 자연과 세상은 하나님의 강하고 위대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만약 사람을 이런 기준으로, 그러니까 바벨탑을 쌓듯 위대해지고 강해지고 높아지는 게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자 기대 그리고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말 그대로 벌레만도 못하다. 그러나 사람은 그걸 목적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 중에 낮아지고, 겸손하며, 섬기고, 사랑하는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진 존재다. 이 사람이 얼마나 귀하고 온전한 존재인가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자기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가 사람이고, 그 연장선에서 존재의 목적을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 결론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까지 하나님께 위임을 받은 청지기 같은 유일한 존재가 사람이다. 이런데 사람이 벌레만도 못하다고?
그렇지만 만약 하나님의 이런 뜻에 반하여 사람이 낮은 자리에서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자리를 떠난다면 정말로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무엇이든 목적을 상실하면 그건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벌레만도 못한 나를’이라는 말은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에 따라 맞기도, 틀리기도 한 말이 된다.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 연약한 사람은 벌레와 비할 수 없는 하나님 아들과 같은 존귀한 존재인 반면, 강하고 위대해지는 걸 사람의 성공과 하나님의 은혜로 보는 관점으로 보면 정말로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 된다.
사람은 벌레와 비할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를 너머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이 담기고, 하나님의 말씀(의와 뜻)이 육신과 삶 그 자체가 되는 유일한 존재다. 게다가 그렇게 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 유일의 존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존귀한 존재가 어떻게든 창조의 목적 안에서, 창조의 목적대로 살기를 바라신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 바라신다가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런 귀한 존재를 벌레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더욱이 하나님은 벌레만도 못한 존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결론을 정리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존귀한 존재이고, 강하고 위대해지는 게 성공이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보면 벌레만도 못한 존재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우리를 볼 것인가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신 존재가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뜻과 목적이 존귀함의 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정말로 존귀하고 위대한 존재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하나님이 바라신다.
이제 어떤가? 우리가 벌레만도 못한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