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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서) 17.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김홍덕 2025. 7. 21. 20:10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유명한 권면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이어서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모든 악을 버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게 언뜻 읽으면 생활과 영적인 일로 구분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형식이고, 영적인 생명의 표현이다. 행동은 영의 정체성에 종속된 표현이다.

 

소멸한다는 건 있던 게 없어진다는 걸 내포한다. 하지만 사람이 성령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 성령을 소멸시킨다는 건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것이다. 성령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그 능력을 떠나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이유와 목적과 능력을 떠나는 게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있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건 구원의 은혜를 떠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는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흠 없이 보전되기를 바란다는 말씀과 이어져 있다. 보전된다는 건 지켜야 할 것이 유지되는 것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고난을 견딘 믿음을 위로하고, 어쩌면 흔들린다고 생각한 재림 소망을 굳건하게 하려 권면한 서신의 마지막 인사라는 점으로 보아 처음에 칭찬한 성령의 능력으로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잘 보전하라는 말씀으로 봄이 합당하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 (살전 1:5 상)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라는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의 본성을 잘 보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잘못으로 성령이 소멸하는 일이라기보다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의 본성에 의해 나타난 항상 기뻐하는 것과 같은 행동 양식을 잘 보전, 그러니까 말 그대로 항상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행동 양식에 관한 권면이고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은 영적 권면으로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예언이라고 하면 그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미래는 언제나 현재의 결과이므로 오늘 어떤 모습이냐를 정의하는 게 진정한 예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순종하는지에 관한 말씀이 진정한 예언이다.

 

이는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영원한 주권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오늘을 살거나 또 반대로 불순종하면 미래는 종속되어 정해진다. 따라서 예언을 다른 사람 모르는 내일의 일을 미리 말하는 신비함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오늘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진정한 예언이다.

 

따라서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미래 아닌 영원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임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의 새 생명은 물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걸 잊지 않았다면, 오늘 나의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라는 말씀이란 것도 알게 된다.

 

구원받은 삶은 이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이 가진 본성으로 사는 삶이다. 따라서 성령의 본성대로, 또 육신이 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걸 권면하고 있다. 이는 앞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모양으로 나타난 삶으로 대변된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다움으로 살라는 말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