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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서) 15. 모든 사람에게 항상 선함으로

김홍덕 2025. 7. 19. 09:50

바울 사도는 고난 중에도 신앙을 잘 지킨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권면들 하고 있다. 말씀을 전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을 각별한 사랑으로 대하며 서로 화목하고, 게으른 자를 훈계하며,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우며 모든 사람에게 항상 선함으로 대하라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은 ''선함'이 무엇인가?'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항상' 그 선함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 것인지다.

 

선함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착하고 성실한 행실이라 생각한다. 이 생각에 성경도 이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세상 사람에게 선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항상'은 좀 다른 문제다. 일단 누구나 '이게 가능해?'라고 생각할 법한 일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대부분은 이걸 고민하지 않는다. 이건 신앙이 없는 것이다)

 

'항상'이라는 빈도는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역량을 모르실 리는 없다. 그럴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어야 하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다.

 

'항상'은 존재적 관점이다. 일어나는 사건, 상황마다 동일한 대응을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항상 사람으로서 만물과 일을 대한다. 모든 사람을 항상 선하게 대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내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모든 사람을 선함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다.

 

'항상'은 존재적 관점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정체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행함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네가 어떤 공로를 쌓았느냐?'가 아니라 '너는 어디(존재의 자리)에 있느냐?'를 물으시고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관계를 물으시는 존재의 신, 여호와시다. 하나님께서 항상, 언제나 라고 하신다면 그건 항상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다.

 

'선함'도 같은 맥락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이다. 존재의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선은 사람이 하나님이 목적한 존재인지를 선의 기준으로 보신다. 그게 사실 유일한 선의 기준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을 것이므로,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목적과 같은 존재면 선한 존재고, 그렇지 않다면 설사 육신이 멀쩡하고 건장해도 악하고 죽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죄와 사망이 가득하고, 우리가 다 사망 가운데 있다고 하시는 근거가 이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뜻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람이 표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걸 보여주러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셨다. 자기 십자가는 개인에게 특정된 십자가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는 의미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대로 사는 것,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선함은 사람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이 보이신 하나님의 선함이자 우리의 존재 목적은 십자가다. 남들 하기 싫고 위험한 희생을 감수한다는 게 십자가의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사람들이 '그 꼴로 어떻게 하나님 아들이라 하느냐?'라는 주장에 자기 육신을 내어주신 게 십자가다. 육신을 내어주었다는 건 육신의 수고를 감당한다는 것이고, 그 궁극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주장하는 주장에 내 육신의 수고를 내어주는 게 바로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본질이고,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거듭남이다.

 

거듭났다는 건 생명으로 났다는 말이다. 생명으로 났다면 그 생명 고유의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이 표현하고자 하시는 겸손하고 사랑하는 게 본성인 생명이 된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누구를 대하든 그 생명으로 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항상' 선함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선함으로 대하라는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바울 사도는 그 생명으로 살아가기를 권면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고난을 이기고 소망을 가진 삶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 삶의 성숙한 모습을 더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