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 전서) 14. 재림을 대비하는 신앙

김홍덕 2025. 7. 16. 10:14

예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죽으심을 믿는 사람,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해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세상의 잠언에도 결과는 생각지 말고 오늘,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와 같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재림은 절대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 그 때가 설령 부지불시라 해도 결과는 같다. 낮에 속한 사람은 기쁨과 영광의 순간이고, 어두움에 속한 사람에겐 도둑과 같은 재앙이 된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이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함께 살리시기 위함이라고 확정한다. 지금 설명하는 대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재림은 그저 사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명확하다. 오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아들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면 어쩌면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재임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사람들은 재림에 관해 지나치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든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 다미 선교회의 일을 회상해 보면, 그들은 '이제 예수님이 오시니 재산 같은 건 필요 없다'라는 말에 자기 재산을 팔아 헌금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예수님의 재림에 나름의 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 속 바울 사도의 대비책은 다르다. 사도 바울의 대비책은 성도들이 서로 예수님께서 죽으심은 우리가 자든지 깨어 있든지 살리기 위함이므로 이를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며 격려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가장 온전한 재림 대비책이란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가장 온전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것이다. 오시는 예수님과 같은 본성으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재림은 미운 오리 새끼가 만난 백조 떼와 같은 구원 그 자체다. 내가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이면 예수님이 언제 오시든 상관이 없다. 언제나 소망은 속히 오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이 도둑이 임하는 것 같은 사람에겐 오지 않아야 하는 일이 재림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기 정체성인 사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자기 의와 존재 목적인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이 삶은 노력하는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그리스도로 살게 된다. 이게 생명과 본성의 이치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로 살게 된다.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하나님께서 정한 구원인 창조 목적을 소망하는 사람이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격려하고, 세상과 교회에서 덕을 세우고 칭찬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재림 대비책이다. 사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이사하는 날 자전거 타고 놀고 있는 아이처럼 재림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언제든 부모가 자기를 데려갈 것을 아는 아이처럼 예수님이 언제 오시든 자기에게 생명과 구원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재림의 대비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 완벽한 재림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