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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서) 9. 오히려 경건하고 성실한 삶을 살라

김홍덕 2025. 6. 30. 14:02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서는 바울 사도는 성도의 삶에 관하여 권면한다. 1절에서 12절까지 간음하지 말고 성실히 일하라 권면한다. 이러한 말씀은 앞서 많은 칭찬을 한 믿음에 관하여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전 3:10) 간음하지 말고 거룩하며 성실함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모범이 되기를 권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바울 사도가 칭찬했다는 건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핵심인 행위로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임이 분명하다. 행위로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간 행동을 경건하게 하여 애쓰던 노력을 그치게 되기 일쑤다. 이건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받는 고난과 환난은 소망을 지치게 하고 남다른 삶을 유지하는 의미를 흐릿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여러모로 복음의 수고와 예수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굳건히 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신앙인 대부분은 처음에 율법적인 신앙으로 시작한다. 이는 우리 신앙 여정을 보여주는 출애굽 여정에 광야를 거친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어떻게든 행위를 경건하게 하려한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경건을 위해 헌금으로 드릴 신권을 준비하고, 새로 산 옷은 가장 먼저 예배에 갈 때 입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날 복음을 바로 듣고 하나님은 그런 행위를 보고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그간의 노력이 무의미해지고, 괜한 짓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광야를 거치지 않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듯이 신앙 여정에서 그 과정은 생략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은 방종이 아니므로 복음을 알고 행위로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고 갑자기 행위의 경건을 다 내팽개치면 사람들에게 복음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가 간음을 경계하라는 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고린도 교회처럼 간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간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세대 속에서 믿음을 잃지 말고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는 뜻이다. 또한 복음이 자유하지만 그 자유로움으로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열심히 또 성실히 일하기를 권면한다.

 

이는 복음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일에 관한 권면으로, 행위가 아니라 아들이란 존재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은 언뜻 세상에서 성실을 등한시해도 될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복음을 바로 만난 사람은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목적을 회복한 성취감도 일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구원이 종점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죽어서 천국가는 게 믿음의 목표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기쁘고 즐거운 살,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삶을 살기 위한 시작이 구원이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성경이 명하시는 모든 삶에 관한 말씀은 구원, 곧 거듭난 생명으로서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죄와 회개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한 번의 회개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고 말하면 구원파가 아니냐? 그럼 구원받았다면 막살아도 되느냐며 따진다. 그건 어떤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회를 상실할까 염려함인데, 그걸 염려한다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거듭남을 바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걸 실토하는 것이다.

 

거듭난다는 건 하나님 아들이 된다는 의미다. 하나님 아들은 생명이고, 생명이라면 본성이 있어 그 본성대로 산다. 따라서 하나님 아들로 거듭났다면 하나님 아들의 본성으로 산다. 그 본성은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칭찬받는 본성이다. 이걸 모른다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권면은 이 맥락이다. 복음을 온전히 받아 다른 지역의 성도들에게 본이 되고 칭찬받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거듭난 생명으로서 그 생명다움을 지키고 따르라는 권면이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전한 복음은 행위로 의로워지는 게 아니나,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따라 경건하고, 순결하며, 성실한 삶을 사는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는 복음의 당연한 본분으로, 생명으로 났으니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건 당연하다.

 

복음은 물과 성령으로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고, 삶의 목적을 회복하는 복된 소식이다. 이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행위로 의로워지는 노력은 그치나 경건하고 순결하고 성실한 삶은 변하지 않고 더 장성한다. 노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본성에 따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자기가 전한 복음이 이런 것임을 상기시키고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성실하고 순결한 삶을 권면한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 안에는 그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