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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서) 7. 온전한 사도와 성도의 관계

김홍덕 2025. 5. 17. 07:11

데살로니가 전서는 보기 드물게 책망보다 오히려 바울 사도가 위로를 받은 내용이 많다. 많은 환난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바울 사도에 대한 신뢰가 컸으며, 지역 성도들의 본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시 데살로니가를 방문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아들처럼 여기는 디모데를 대신 보냈다. 디모데를 통해서 행여 환난으로 인한 낙심이라고 있을까 확인했는데 오히려 굳건한 믿음에 위로를 받았다고 화답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바울 사도의 관계는 사도와 성도들은 이상적인 관계다. 귀한 복음을 섬기는 마음으로 전했고, 성도들은 그 복음을 진심으로 믿었다. 서로가 서로의 보증과 위로가 되는 진정한 관계가 형성됐다. 이는 바울 사도는 복음의 본질을 바로 전했고, 성도들은 그걸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살전 3:8)

 

복음은 놀라운 면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당연히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데 막상 그 내용을 보면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가진 개념과 상반된다. 세상은 귀하게 여긴다면 귀하고 높이 대하는데 복음은 그렇지 않다.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음으로 열어보니 낮아지고 섬기는 것임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바울 사도는 존귀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지만,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존귀함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일면 자기가 성도들의 대접을 받을 충분한 명분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그런 자격을 행사하지 않았다. 복음의 귀함은 바로 낮아지고 섬기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낮아지고 섬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고,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7)

 

복음은 정말로 존귀하다. 진정으로 거듭난 생명이 되어 하나님의 의를 하나씩 알아갈 때는 마치 머리에 누군가 사이다를 쏟아부은 것처럼 생각과 삶에 큰 청량감과 감동과 만족과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계획을 사람을 위해 행사하신다는 놀라움에 놀라고, 존귀한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그 감동을 진정한 존귀함으로 여긴다.

 

그래서 대부분은 복음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이를 모르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대비하여 자기를 존귀한, 최소한 존귀함을 간직하고 선택받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런 자부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동력으로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고 죽는 순간까지 잊으면 안 되는 게 있는데, 그 귀한 하나님 복음의 본질은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복음의 가장 근원적 본질은 낮아지고 섬기고 겸손하며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앞서 언급한 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바울 사도의 관계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그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전한 관계다. 복음 본질을 바로 알고 전하고, 그 복음이 온전하다는 걸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관계다. 이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 보증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그 복음을 받아 거듭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인 관계처럼 보인다. 전하는 사람이 거저 주는 것으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복음을 들은 사람이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복음을 전한 사람의 위로와 보람과 의미와 양식이 된다. 복음을 전한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의 동력이 된다.

 

복음은 온전한 만큼 제대로 전해졌다면 사도와 성도 관계는 온전할 것

 

이런 온전한 관계가 되려면 앞서 언급한 대로 복음의 본질이 온전해야 한다. 즉 귀한 복음의 실체가 낮아지고 섬기고 겸손하며 사랑하는 것이라는 게 잊혀선 안 된다. 온전한 복음이 전해지고 그걸 듣고 살아가는 관계가 온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요즘 시대로 표현해서 목사와 성도들 간의 관계가 늘 개선점이 있고, 더 나아지기를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상태라면, 그건 복음이 온전하지 않아서거나 드물게 마음 밭이 온전하지 않아서 그렇다. 온전한 복음이 하나님께서 기대하는 사람에게 전해지면 온전한 열매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