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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성경) 선악과 - 2

김홍덕 2025. 3. 2. 13:50

선악과는 왜 만들었나?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선악과에 관한 집합적 의문, 왜 만들고, 왜 에덴동산 중앙에 두었고, 왜 지키지 않았는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이 문제가 의문스러웠고, 궁금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한 번쯤은 궁금했겠지만, 대부분은 해결하려고 크게 애쓰지 않는 문제인 것도 분명하다.

 

선악과를 왜 만들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게 뭔지는 당연히 알아야 하니 다시 정리하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게 하나님의 피조물인 내가 하나님과 다르게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므로, 선악과는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 피조물인 내가 가진 선악의 기준이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피조물인 사람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선악의 기준

 

이제 '선악과는 왜 만들었는가?'로 대표되는 집합적 질문을 이야기할 텐데, 먼저 생각해 볼 것은 하나의 실존은 부수적인 실존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을 정의하면 자연적으로 뒷면이 정의되고, 남자가 사라지면 여자라는 말도 사라지며, 진리가 존재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거짓이 정의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게 선악과와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품과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말씀이 이것인데, 사람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물리적 실체, 내용을 표현할 형상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자기 의사도 없이 세뇌된 듯 하나님을 표현한다면,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드러날 수는 없다. 그건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자기 의사로 선택하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성경이 왜 그렇게 순종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배경으로 선악과를 상고하면, 선악과는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긴 개념 혹은 명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 그를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셔야만 했고, 그렇게 하셨다.

 

그러나 선택의 권한을 사람에게 맡기신 이상 사람이 선택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사람에게 말씀해 주셔야 한다. 알려 주지도 않고 "왜 그랬냐?"라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런 교활한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건 다 육신이 가진 생각과 본성대로 결정해도 되지만, 선악만은 스스로 정하지 말라는 게 단 하나의 뜻이었다. 이거 하나 순종하라고 하셨다. 이 뜻이 표현되니 선악과, 즉 선악을 먹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아울러 스스로 선악을 정하는 존재가 된다는 건 사망, 창조 목적을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께 무쓸모인 존재가 된다고 경고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 17)

 

그러므로 선악과는 사람을 시험하기 위해서 별도로 만드신 게 아니다. 사람에게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를 맡기셨기에 선택의 기준인 선악의 기준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므로 선악과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아바타로 창조되었다면 선악의 기준도 미러링되니 선악과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아담에게 하신 말씀 속에도 드러나는데, 모든 선택은 네 맘이나 선악의 기준은 스스로 가지지 말라는 의미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려면 당연히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과 같아야 한다. 높아지는 걸 선으로 여기면서 낮아지는 걸 선으로 여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방법은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막 10:18)

 

아마도 이런 접근은 아주 생소한 접근일 것이다. 이 생소함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행위 중 무엇을 본질로 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존재임을 인식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존재의 목적인데, 사람은 목적보다 존재하므로 행하는 행위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여기서 선악의 기준을 가지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행위를 자기 결정대로 할 수 있기에 행위의 동기와 명분이 되는 선악의 기준을 자기가 정한다. 사람의 이런 본성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별도로 만드신 게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선악과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에게 세상 남녀가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굳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셨다고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선악과는 인생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나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