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의 등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명에 대한 말씀을 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온전한 대제사장이자 예수님의 제사 곧 십자가가 온전한 제사라는 것을 말씀하려 함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사람의 죄를 속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사람의 죄를 사하고 구원을 얻게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온전한 제사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던 온전한 멜기세덱을 소환하여 예수님이 그 반차에 속한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온전한 제사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사가 온전하므로 멜기세덱의 반차에 속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예수님의 제사는 이전의 제사와 다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사가 달라졌다는 것은 율법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온전한 제사이듯, 율법을 완성했다는 말로 율법도 달라졌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제사와 율법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전 제사는 형식적이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전하고, 이전에는 행함으로 율법을 지켰으나 이제는 율법을 주신 의가 사람의 본성이 되므로 살기만 하면 모든 율법이 지켜지는 세계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드린 제사인 십자가는 사람이 육신을 가진 이유를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향유옥합과 같이 육신을 깨뜨리시니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람에게 구원이다. 사람이 자기 육신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의가 형상으로 나타난 존재다. 하나님의 본성과 생명이 육신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존재가 아들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숨었을 때 가죽옷을 해 입히셨다. 그것은 어떤 희생이 있어야 구속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 달려 깨어지므로 십자가 아래 백부장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한 것과 같이 그 속에 있는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 아들의 본질인 아버지의 성품이 드러났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의로운 사람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종이 되어 육신으로 수고하는 희생을 하면 그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대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의 존재와 형상(이미지)과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희생이고 이것이 바로 산 제사다.


<질그릇의 선택> 중에서


그래서 십자가가 가장 온전한 제사다. 예수님의 희생과 제사는 예수님이 했으니 온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의대로 드려진 제사이기 때문에 온전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육신으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의가 거하는 육신의 희생, 세상의 가치 앞에 육신으로 수고하고, 종이 되고, 심지어 목숨을 내어주므로 그 속에 거하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영광이란 ‘나타난다’는 의미니까.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육신이 사용되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온전한 제사다. 이런 삶, 이런 제사를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먼저 하나님의 의가 내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니 육신을 가진 인생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육신도 저와 같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임을 알게 되니 그것이 번제고 희생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온전한 대제사장이시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온전한 제사로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므로 율법도 완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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