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유명한 말씀이다. 아주 유명하고 그 의미도 깊은 말씀인데 앞뒤의 말씀과 이어서 생각하면 거의 생뚱 맞은 말씀이다. 


이 말씀의 앞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준 사람의 믿음을 본 받으라는 말씀이 있고, 뒤에는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지 식물로 아름답게 되는 것이 아니며 식물로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그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다는 말씀이 있다.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되는 배치는 아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위해서는 전도라는 것의 온전한 개념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전도라는 것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고 삶이 형통해진다는 것을 전하고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만 할 뿐인데 그것이 생명을 이어가는 법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의 본성에 끌려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것을 본 육신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이 전도의 본질이다.


예수님이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다. 이를 종합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뜻하신 하나님의 와 창조 목적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고, 그 모습의 실체를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보이신 하나님의 의, 하나님께서 육신 가진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는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앞에 나의 육신의 수고와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도 내어주는 본성이다. 그 본성이 육신의 삶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 아들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람들이다. 히브리서가 그 행실을 주의하여 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라고 한 대상이다.


이는 이 히브리서가 예수님의 희생이 나의 구원이라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흐름 안에 이 말씀이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육신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첫 열매가 되심과 같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을 본 받은 사람들도 예수님이 보이신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심겨지고 이를 성령이 잉태케하심으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법이다.


십자가의 희생을 드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깨달은 사람이 다시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 아들,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주신 육신으로 표현하면서 사는 삶을 살게 되는 영원한 순환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그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이 보이신 그리스도의 본성이나,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의 의가 자기 육신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아들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표현된 그리스도는 영원히 동일한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이것이 동일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하나이고, 사람도 하나이며, 사람을 지으신 목적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희생의 모습을 보고 자기 삶의 목적이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안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생명이 되는 거듭남을 통하여 육신으로 그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는 항상 동일하다.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말씀이 왜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전한 사람의 믿음을 본 받으라는 말씀과 함께 기록되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내가 어떤 이의 말씀과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의로 거듭났을 때, 나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함을 확증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이 될 수 있고 된다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동일하신 것은 단지 예수님의 신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되며, 나의 삶이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되어 육신으로 표현되는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함께 설명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되었다면 분명히 내가 알기 전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알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이나 말이나 글과 같이 육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표현되었고, 육신을 가진 내가 육신이 표현한 그것을 보고서 하나님의 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의와 뜻과 말씀, 곧 복음은 절대로 육신을 가진 사람을 통하지 않고 알 수는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실 이유가 없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유일성에 관한 말씀이다. 그것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육신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육신을 가진 인생이 그 의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동일하다고 하신 것은 이 법도 함께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디 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났다거나, 꿈이나 환상 중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구원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구원이 되려면 그 사람도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일전에 만난 몰몬교 선교사에게 반문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육신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육신을 가진 내가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그 말씀으로 거듭나는 법은 언제나 동일하고, 그 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의 본성도 항상 동일하다. 그리고 그 법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에게 말씀을 전한 사람의 공로를 상기하면서 감사하려고 하지 않아도 거듭났다는 자체가 그 믿음을 본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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