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1:1-4) 율법이 해이하고(Rev. 0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하박국 Date : 2021. 1. 19. 11:27 Writer : 김홍덕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1:4)

 

앞에서 ()이란선하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피조물로 살면서 하나님의 의가 아닌 사람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을 대하며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악과 죄의 본질이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보고 있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고 간구한 악도 그것이다. 이것은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박국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악으로 규정한 것을 벗어난 것을 기록하고 성경이 될 수는 없다.

 

하박국은 보고 있는 것이 힘든 악의 실체를 율법이 해이해지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율법과 공의가 무너진 것이 세상의 악이라는 것이다.

 

율법이 해이해졌다는 것은 율법이 마비되고, 게으르며 아무렇게나 한다는 의미다.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함께 있다는 것에서 율법이 해이해진다는 것은 곧 세상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율법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율법이 해이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신 것에서 예수님 이전에는 율법이 온전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5:17)

 

하지만 율법 자체가 온전하지 않음이 아니라 온전한 세상을 사람이 악하게 판단하는 것처럼 온전한 율법의 본질과 의미를 알지 못함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세상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다는 것과 결을 같이 한다. 죄와 사망에 있다는 것이나 율법이 해이해졌다는 것이 같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오실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실 때 유대인들은 역사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 율법을 더 잘 지키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율법이 해이해졌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율법과 성경을 엄격히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죄와 사망이기에 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신 것이다.

 

사람이 율법과 성경을 지키며 살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구원이 필요하다고 여기신다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율법이 해이하다는 의미다.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지키려는 것은 공의롭지 못하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율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율법을 모세의 율법과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 즉 구약성경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심청전을 읽고 효도는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믿고 주장하듯 구약이든 신약이든 그 내용을 행위로 지키는 것이라고 믿으면 모든 성경이 율법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 그대로 지키려 하는 것이나 존재론적 신앙마저도 Have to가 되면 율법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을 행위로 지켜서 의롭게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면 그렇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완전케 하신다는 예수님의 정체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뜻인 말씀이 육신으로 표현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거듭난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표현이고, 생명이란 그 본성대로 사는 존재라는 의미이므로 말씀은 문자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본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율법과 복음과 성경의 본질적 의미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거듭남을 새 생명을 얻는 구원이라고 한다. 생명으로 나면 그 생명대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궁극의 뜻이다. 그리스도로 난다는 것은 창조의 의도대로 하나님의 성품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본성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이기에 더 분명하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이 법과 달리 율법은 물론이고 신약성경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까지도 그 말씀을 주신 의가 자기 본성이 되는 것을 구하지 않고, 육신으로 지켜 행하므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 한다.

 

우리가 정말로 상식적으로 양심이 있다면 율법을 행위로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 오늘날에는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의 관점과 달리 사람을 부정하게 보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야 온전하게 된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는 부정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이 지은 육신 가진 자기 인생을 부정하게 본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하시고 온전하시며 실수도 않으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을 악하다고 한다. 모든 사람과 사람의 일을 율법을 지켜야 온전해지는 부정하고 악한 자신과 같이 부정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 하나님의 의도를 외면하고 율법이 의도한 생명대로 나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지켜서 율법을 이루려는 것이 바로 율법이 해이해진 것, 곧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이다. 의도된 대로 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악이고 죄다.

 

하박국은 이렇게 하나님의 의대로 사람들이 살지 않는 것을 악이라고 말한다. 선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나,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대로 생명이 되어 율법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 않고 사람의 생각대로 율법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행위로 지키려는 것, 그것이 바로 율법이 해이해진 것이며 하나님 앞에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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