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 행함은 생명의 본성으로부터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9. 16. 04:00 Writer : 김홍덕

생명이란 존재는 그 본성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예수만 믿으면 아무렇게 살아도 되느냐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정체성이 아무렇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 님께서 살았다고 말씀하시는 선한 생명의 본성이 행동으로 나타났 는데 행동이 죄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생명으로 여기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 아래 있으면 도둑질을 해도 되느냐?’ 가 논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선하다고 믿는다면 선하신 하나 님의 의가 어떻게 자신의 본성이 되는지가 논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난 그리스도의 생명이 악을 범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생명 없는 사람의 생각


선하신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면 당연히 하나님의 선하심이 행동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자신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된 다른 사람의 행동도 선한 것으로 보게 된다. 서로 그런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다. 이것은 대부분의 신앙인에게 생소할지 몰라도 이것이 이해되지 않고 경험한 바가 없다면 아직 거듭난 생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분명한 말씀과 명제와 논리 앞에 솔직하지 않다면 가능성조차 없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해 보면 이것은 너무 분명하다. 선하신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된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이신 것은 다 선한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은 찬양했지만 예수님의 행동에는 늘 시비를 걸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행위가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 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선하다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선한 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동일하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가지고 있던 불신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오늘날도 엄연히 있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분열하고 싸우는 것도 이 불신 때문이다. 서로가 하나님의 의로 거듭난 사람들이 모였다는 교회 안에서의 다툼이 그렇고, 자신은 행위를 의롭게 여기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의 행동을 자기 기준으로 책망한다. 그 신앙 관이 예수님을 향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가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 행위규범에서 벗어나 존재의 법 아래 있다면 사람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고, 행여 존재의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책망하면 순순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같이 자신을 내어 줄 것이기에 다툼이 있을 이유가 없다.


행함은 본성에서 나온다. 이것은 생명 세계 불변의 진리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라 믿고, 하나님은 외모나 행위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죄를 논할 때는 행동을 정죄 하고 심판할 수는 없다. 이것이 모순적인 상태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하시니 하나님의 선하신 의로 거듭난 그리스도의 심령을 가진 사람의 행동은 모든 것이 선하다. 이것이 초점이다.


그러므로 선한 생명을 가졌는데 악한 행동을 하면 되겠느냐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신앙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선한 생명이 어떻게 악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하나님을 선하게 믿고 생명의 법에 따라 생명의 본성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면 도저히 그런 것이 궁금할 수 없다. 행함과 믿음에 대하여 헛갈릴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생명의 법도, 하나님의 선하심도, 구원도 없는 상태다. 그땐 그렇다는 것은 시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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