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십자가의 본질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10. 14. 04:00 Writer : 김홍덕

십자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든 사람의 구원인 것은 틀림 없다. 자기 안에 십자가가 구원인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구원이지만, 왜 십자가가 구원인지 모르고, 십자가가 구원인 이유가 자기 안에 없다면 구원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영혼 구원의 문제고 구원받은 삶은 영원한 것이니 영원한 문제인데 인과관계도 모르면서 헌금 내면 “너는 구원받았다” 말하는 사람 말만 믿고서 그냥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할 문제로 여기기엔 너무 중요한 사안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사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이신 사건이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목적은 어떻게 달성되는지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사람인 나에게 사람의 정체성을 보이려 하셨는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의 정체성으로 보이지 않으면 십자가의 구원이 미칠 리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역시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죄명으로 보면 유대인의 왕이 라고 말하는 것이 반역죄에 해당하지만, 그 죄를 심판한 빌라도가 보기에도 예수님의 모습은 왕이라고 하기엔 너무 형편없어 그냥 놓아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 아들은 그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가 있는데 예수님은 그 정의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라고 하고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것 같으니 하나님 아들에 대한 자기들만의 우상이 있는 유대인들로서는 예수님을 살려 둘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은 그때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떻다는 자기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나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에 대한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 모습이 의롭지 않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세리와 창녀와 함께 먹는 나사렛에서 난 목수의 아들이 하나님 아들일 리 없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 둘 다 사람의 모습이 문제였다. 사람이라는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다는 것이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의 공통점은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관점이고, 하나님과 다른 관점이기에 죄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스러운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왜 심문을 받으실 때 다른 모든 송사에는 답하지 않으시다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두 가지 질문에만 답을 하셨을까?. “유대인의 왕이냐?” 물으니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답하시고, “네가 찬송 받으실 자의 아들이냐?”라고 물으니 “내가 그로라”라고 죽을 답만 하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외에 성전을 3일 만에 건축하겠다고 했다는 것과 같은 송사들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 질문은 뭐라고 답해도 매를 맞기는 하겠지만 죽을 죄는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러셨는지 이유를 아는 것은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겠다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곧 우리 구원의 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답하신 이유를 모르는데, 자기 안에 그것이 생명과 본성이 되어 있지 않는데  “나는 구원받았다” 말하는 것은 답안지도 제출하지 않고 나와서 “합격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언 이다. 독립선언이 선언을 낭독하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것이듯, 예수님의 선언은 예수님과 동일한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존재라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독립선언문을 듣고 참여하면 독립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처럼 자신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 죽을 줄 알면서 답하신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사람의 정체성을 보이기 위함이고 십자가로 가신 것도 사람의 정체성을 보이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뜻임을 보이셨다. 그 모습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모습이 라는 것임을 보이셨다. 십자가에 달리시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들이 존재하면 아버지도 존재하니 하나님 아들임이 드러났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낸 것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아들로 보이니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임이 드러나려면 십자가로 가기 전에 속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십자 가는 아무나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가 생명과 본성이 된 사람이어야 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만 질 수 있다.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를 지니 하나님 아들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간 것은 군병들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이라는 본성이란 의미다. 하나님의 영이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이고, 십자가에서 아들임이 드러났다면 십자가 이전에 이미 아들이었다는 의미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미 아들이었고, 그 아들의 본성이 십자가로 데려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조각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 비추어 예수님을 죄인으로 삼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여기겠지만, 사실은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생명과 법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데려간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가게 한 것은 신념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


이것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병사들과 맞선 베드로에게 이 상황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성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의무감에서 나온 신념을 가지고 십자가로 가셨는가?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다. 성경 곧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신 하나님 아들이다.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니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십자가로 가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생명의 법이 끌고 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아들의 본성이 십자가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자기가 지겠 다고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 곧 하나님 아들만 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 구분은 있어야 영광의 십자가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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