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 성령충만 (1)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Date : 2020. 11. 4. 15:15 Writer : 김홍덕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낳고 낳는 세계다. 생명의 세계라는 말이다. 생명은 억지로 하거나 노력하거나 신념을 가지고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이끄는 대로 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 생명은 육신의 호흡이 아니라 존재하는 목적을 이루면서 살면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이라는 목적 관점에서 생명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죄와 사망 가운데 있다고 하시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그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게 하시는 영(靈)이다.


생명이 기계나 조각물과 다른 것은 안에서 밖으로 자라고 작동한다는 점이다. 또 외부에서 입력된 명령이나 조작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고 자기 안에 있는 의에 대한 생각과 본성을 따라 움직인다. 행함과 살아가는 이유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생명이고, 밖에 있다면 생명이 아니라는 의미다. 또 사람이 만든 기계나 조각이 더 커지려면 밖에 무엇을 붙여야 하지만 생명은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자란다. 기계나 조각은 움직임의 이유와 방법과 동력이 자신 밖에 있지만 생명은 자기 안에 있다. 그것을 본성 혹은 DNA라 한다.


하나님의 세계가 생명의 세계라는 것은 절대로 간과하면 안 된다. 성령으로 그리스도가 잉태된다는 것,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성경을 지켜야 하는 자기 밖의 이유가 있어서 지키는 사람이 자기 본성대로 사는데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성경을 지키는 이유와 동력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 있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죽어서 천국가기 위해서 성경을 지키고, 성경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실까 하는 자기 밖을 넘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이유를 둔다.

 

물론 오지 않은 미래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성경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미래, 곧 내일은 자기 것도 아니다. 괜히 하나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자기 힘으로 난 것도 아닌 주제에 내일 일을 목적과 자기 삶의 이유와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 권세에 대한 월권이자 도적질이다.


생명이 본성을 좇아 행동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면서부터 온전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날 때부터 사람으로서 온전하다. 살면서 사춘기가 되면서 팔다리가 붙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온전하다. 그 날 때부터 난 것이 자라면서 점점 능숙하고 온전해진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자기 안에 있는 본성과 유전자에 의한 이끌림이지 밖에서 어른이 되게 하지 않는다. 자라는 것과 노력하여 성취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특히 그 노력이 본능과 존재 정체성과 목적을 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성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낮아지는 것임을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보이신 것과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을 살았다고 말씀하신다는 의미다. 따라서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생명 본성이 아니다. 노력한다는 것은 날 때(났다고 주장한다고 치고) 온전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생명이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따라서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을 바라며 성경을 지키는 노력은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기에 생명이 아니다. 하나님이 살았다고 여기지 않는데 생명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생명이 되게 하신다는 것,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온전한 생명으로 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니 그 자람이 있을 것이다. 생명으로 났다는 것은 그 생명이 가진 본성대로 살아간다. 그것이 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삶을 채워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이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장성함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에서 말씀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라고 했는데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된 온전함이라는 것이 속에서 넘쳐나는 생수 같은 본성과 같은 것이다. 즉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가진 존재 자체가 되는 것이 바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라 된 온전함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마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나 불가사의적인 일을 행하는 능력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하여 완전히 무지한 것이다. 성령은 생명이 되게 하시는 분이고, 성령이 잉태케 하는 생명은 하나님께서 존재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살았다고 하시는 것이며 그 살았다는 기준인 사람 존재의 목적은 예수님께서 낮아지는 십자가를 통해 보이셨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함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속에 있는 성령의 충만은 성령께서 잉태케 한 생명이 충만하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삶이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살아감이 날마다 풍성해지는 것이다. 곧 낮아지는 삶, 자기가 옳다는 주장 앞에 내 육신의 수고를 내어는 일이 갈수록 풍성해지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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