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 성령이 오시면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Date : 2020. 10. 29. 13:02 Writer : 김홍덕

제자들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는 세상의 임금 이상으로 높은 존재인 만큼 당연히 세상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욥은 하나님은 행위로 사람을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하나님을 사람의 행위대로 복주고 벌주는 신이라 믿는 빌닷과 소발과 엘리바스와 같은 이들에게 멸시는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육신이 세상의 법에 의하여 죄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모두 변했다. 욥은 엘리후의 책망과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이후에 자신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므로 죄와 티끌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했다. 바울 사도는 “누가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줄까?” 신음했는데 특별한 계기 없이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는 정죄함이 없다>고 완전한 반전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을 인함이라고 설명한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지 못하여 괴로워했다.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그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온전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로 전할 뿐 아니라, 그것은 전하는 것에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일어난 이런 변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고, 성령의 강림이다. 암 환자가 수십 명씩 치유 받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사람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이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령이 오시면 성경에 대한 의문이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성령이 오신다면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의문이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신앙과 관련하여, 예수님을 믿는 삶과 관련하여 의문이 있고, 알지 못함을 인하여 곤고함이 있고, 자기 삶과 또 사람들의 삶을 보며 ‘왜 그런가?’라는 의문이 있다면 성령이 오시지 않은 것이다.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다. 본성은 노력하지 않는다. 생명은 자신이 생명인 것을 의문스러워하지 않는다. 생명이 없기에 의문스러울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안다’라는 개념도 도움이 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안다’는 지식이나 머리로 아는 것이나 이해가 아니다. 자기 안에 그럴 수밖에 없는 동일한 이유가 있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체휼되었을 뿐 아니라 생명이 자기 본성을 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에 대하여 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 역시 같다. 예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자기 안에 그 말씀의 의와 생명이 있어서 화답하는 것과 같다. 수가성 여인에게 “네 속에서 생수가 넘칠 것”이라고 하심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을 알면 신학(神學)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우롱하는 것인지 분명해진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임한 사람은 성경을 넘어 세상과 삶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 본성이 된 사람이 하나님 만드신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 귀하고 귀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지,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온전하게 알지만 세상에서의 삶, 육신의 형편과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 왜 달라지지 않는지 그 분명한 이해가 자기 안에서 나온다. 성령이 오셔서 그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의를 생명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알지 못한다면 성령이 오시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거듭남도 없다.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정상이고 온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착하게 살고 성경을 지켜서 자신들이 생각한대로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기를 바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런 자신들의 신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자신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로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도록 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믿음이라 여기는 한편 자신들의 목표치에 이르기 전에 겪는 힘든 과정을 하나님의 시험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세상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삶의 어떠함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의 척도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즉 외식하는 신앙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바로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로 하나님 아들의 권세와 지위에 맞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가치로 심판 받아 낮아질 뿐 아니라 죄인과 같이 오히려 육신을 섬기고 수고하는 것에 내어주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도록 하시는 능력이다. 성령이 오시면 그것이 자기 본성이 된다. 성령께서 그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이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본성은 생명이 가진 고유한 것이므로 당연하게도 생명이 바뀌는 거듭남이 아니면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과 제자들이 성령이 오시므로 겪은 변화가 자신에게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도 잘 되어야 하는데 왜 자신이 그렇지 않은지 답을 얻는 과정은 실로 괴롭다. 어쩌면 이 괴로움을 겪지 않으면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자들의 모습이 그랬고, 욥과 바울 사도의 모습도 그랬다. 개인적인 경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면서 이 과정을 지난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다.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이고 아직 세상이 하나님께 멸망당하지 않았으니 그런 사람이 세상에는 많겠지만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성령에 대하여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이 보여준 결과는 사람들이 성령에 대하여 아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과도 다르다. 기적을 일으키고 방언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본질이 아니다. 그런 현상은 부속적인 것이고 현상의 일부지 성령의 본질이 아니다. 성령은 예수님에 대하여 알게 하시는 영이고, 하나님의 의가 내 속에서 생명이 되어 예수님과 같이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시는 영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 오순절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못 박히는지를 밝히 알게 하신 성령이 자기 심령에 오셨다면 성경은 의문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밝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해서 알려는 사람, 기적으로 성령을 체험하려는 사람은 이 성령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이자 보혜사 성령께 그런 본성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바로 성경과 삶에 대한 의문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게 아니면 다 거짓 영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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