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비유 (4)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6. 9. 11:27 Writer : 김홍덕

좋은 땅

교회는 씨 뿌리는 비유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 방법을 설교한다. 하지만 백배의 열매를 맺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좋은 땅이 되는 거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땅은 길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지도 못할 심령, 자기 의로움이나 세상 걱정이 많은 심령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쉬운 게 아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대와 달리 오늘날 기독교인 대부분은 새가 와서 씨를 다 먹어버리는 길가와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도 하니 씨가 뿌려져 싹이 나고 있다고 여기지만, 십자가를 지고 낮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어 세상에서 높아지려는 심령에 심길 리는 없다. 즉 심령에 하나님 말씀이 심기지 않는다. 그나마 떨어진 흔적 정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가 설교하는 백배의 열매 맺는 방법은 모두 신기루고 희망 고문이다. 백배가 아니라 최소한의 열매라도 맺으려면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 싹이 나야 하는 데 낮아지는 본성을 가진 생명을 싹트게 하는 말씀이 높아지고 이기려는 마음에서 싹을 피울 순 없다.

 

또한 교회가 추구하는 방법이 성경을 지키는 거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성경을 지킨 공로로 인해 세상에서 이기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믿음을 가진 심령에서 십자가를 지는 말씀이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명백히 방향이 반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능하다고, 그렇게 하라고 외치는 게 설교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백배의 열매를 맺는 방법이라 말하는 말들은 사실상 무덤에 회칠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명이 없는 곳에 생명의 흔적을 칠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열매가 무엇인지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매는 당연히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열매다. 그 기준을 가진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세상의 실패자가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열매라는 믿음은 열매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난 생명의 삶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매는 십자가에서만 열린다. 따라서 좋은 땅,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매를 삼십 배, 육십 배, 백배 맺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열매는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또 그 삶을 통해 거듭나게 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이 열매는 지겹도록 설명한 바와 같이 낮아지는 삶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더 옳지만 옳지 않은 자들의 주장 앞에 자기 육신을 내어주는 본성, 더 온전하지만 온전하지 않은 자들의 주장에 자신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본성으로 낮아지는 삶의 모습이다.

 

이런 삶이 열매고, 이렇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좋은 땅이다. 그 좋은 땅은 시절을 좇아, 삶을 살아가면 갈수록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하루하루를 산다는 게 십자가를 지는 삶이므로 살수록 열매가 배가 된다. 그렇게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의 본성, 낮아지고, 어리석은 주장 앞에 육신의 수고와 육신을 내어주는 삶을 사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땅이고, 그 삶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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